
투표 의무제 국가도 있다. 호주는 투표를 안 하면 벌금이 78호주달러(약 8만원)다. 그러니까 투표율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나라다. 참정권 못지않게 투표의 질도 중요하다는 사람은 재작년에 타계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였다. 1994년 3월 11일 그 나라 '스트레이츠 타임스(Straits Times)'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40~60대 중년에게는 두 표씩의 권한을 줘야 한다"고. 30대 이하 철딱서니 없는 젊은 층보다는 신중하게 투표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투표권을 18세로 낮추자는 한국 일부 정치권에서 들었다면 귀를 씻고 싶었을 게다. 참정권은 어떤가. 민주주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도시국가 폴리스(polis)의 반(半)자유민, 종속민에게는 납세와 병역의무는 있어도 참정권은 없었다. 그들을 '페리오이코이(perioikoi→주변 사람들)'라 불렀다.
여성 참정권은 말할 것도 없다. 여성 투표권을 최초로 부여한 국가는 1893년 뉴질랜드였고 호주(1902) 핀란드(1906) 미국(1920) 영국(1928) 이탈리아(1945) 프랑스(1946) 순이었다. 한국은 스위스(1971)보다도 단연 앞선 1948년부터였다. 중동에선 쿠웨이트 2005년, 아랍에미리트 2006년, 사우디는 재작년이었다. 중국에선 투표소를 '투표참(投票站:터우퍄오잔)'이라 부르고 투표함도 '투표상(投票箱)', 개표는 '개상험표(開箱驗票)'지만 기표 방식도 가지가지다. 터키는 EVET(yes)라고 새겨진 도장을 찍지만 이집트는 펜으로 V(승리) 표시를 하고 독일은 X자를 쓴다. 크로이츠(kreuz→십자가)가 X지만 마치 OX의 X같다. 호주는 또 1 또는 2 내키는 후보와 정당 기호를 써 넣고 일본은 맘에 드는 후보 이름을 쓴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그런데 우리 투표 도장의 ㅅ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아무 뜻도 없는 그냥 무늬?
시끄럽던 유세전과 전화벨 소리 등 소음도 쥐 죽은 듯 가라앉은 채 드디어 어제 투표를 거쳐 밤새 거룩(?)하고도 장엄한 거국적 개표 드라마가 펼쳐졌다. 7개월 앞당긴 보궐선거로 19대 대통령이 정해진 거다. 그에게 뛰어난 국가 지도자 상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정상적인 두뇌에 상식선의 정치인이기를 바랄 뿐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