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상까지 아스팔트 도로
성역화사업 첫단추 잘못끼워
산성내 건축 사료근거 미흡
역사성 규명후 정비 재추진
"행주산성요? 과거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신혼부부 일행의 단골 뒤풀이 코스였죠."
행주치마로 돌을 실어나른 부녀자 이야기 등 교과서를 통해 민·관·군 호국성지로 인식된 행주산성은 역사유적이라기보다 사실상 서울 근교 유원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넉넉잡아 30분 남짓 행주산성 경내를 돌아보면 전투유적지로서 '스토리'가 안 보인다.
방문객 대부분은 행주대첩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전개됐는지, 심지어 산성이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198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산성 주변 100여개 대형요식업소가 오히려 인지도가 높다.
이 같은 현실은 지난 1970년 국가시책인 행주산성 정화(성역화)사업에서 기인한다. 당시 정부는 국민들의 호국정신을 고취할 목적으로 별안간 관리사무소를 세우고 산 정상까지 아스팔트도로를 뚫었다. 토성이 발견되기도 전의 일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도로로 인해 토성 유구가 훼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행주산성은 이후에도 수난을 겪는다. 1991년 서울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돼 이듬해 400여m에 걸쳐 일부 복원된 토성은 상부에 탐방로가 설치돼 지면이 가라앉는 등 꾸준히 훼손돼왔다. 유적의 스토리와 동떨어진 이 탐방로는 방문객들이 토성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또 석성 발견 때 전쟁유물이 함께 출토된 점에 주목, 발굴에 앞서 전시시설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90년대 중반 일산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복수의 대학교와 박물관, 고양어울림누리 수장고 등에 분산돼 체계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선 급한 대로 정체성이 모호한 산성 내 건축물 중 하나를 임시전시시설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사료근거가 미흡한 가운데 건립된 행주산성 건축물들은 발굴철학을 수립하는 데 있어 반드시 풀고 넘어야 할 숙제다.
산성 경관 저해 요소인 행주대첩비 앞 계단과 광장을 비롯해 행주서원과 기능이 중복되는 '충장사'(이상 1970년 준공), 콘텐츠가 빈곤한 '충의정'(1977년), 엉뚱하게 들어선 국궁장(1986년) 등에 대해 개선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건축물대장에도 등재돼 있지 않은 해당 시설물들은 훼손 유적 및 지형 복구 차원에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이제라도 명확한 역사성 규명을 선행한 뒤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곽연구 분야 권위자인 심광주 서울시 문화재위원은 "문화재는 오래되고 화려하다 해서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성이 닿아있을 때 비로소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행주산성은 한강을 중심으로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중요한 기능을 했고, 특히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통해 당나라로부터 국토를 지켜내는 등 여러 역사적 레이어가 겹치는 곳임에도 그동안 콘텐츠를 살리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주산성이 지닌 역사성은 익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그 콘텐츠를 중심으로 복원·관리해 간다면 국가를 대표하는 전쟁유적지로서 위상과 가치를 회복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김우성·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성역화사업 첫단추 잘못끼워
산성내 건축 사료근거 미흡
역사성 규명후 정비 재추진
"행주산성요? 과거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신혼부부 일행의 단골 뒤풀이 코스였죠."
행주치마로 돌을 실어나른 부녀자 이야기 등 교과서를 통해 민·관·군 호국성지로 인식된 행주산성은 역사유적이라기보다 사실상 서울 근교 유원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넉넉잡아 30분 남짓 행주산성 경내를 돌아보면 전투유적지로서 '스토리'가 안 보인다.
방문객 대부분은 행주대첩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전개됐는지, 심지어 산성이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198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산성 주변 100여개 대형요식업소가 오히려 인지도가 높다.
이 같은 현실은 지난 1970년 국가시책인 행주산성 정화(성역화)사업에서 기인한다. 당시 정부는 국민들의 호국정신을 고취할 목적으로 별안간 관리사무소를 세우고 산 정상까지 아스팔트도로를 뚫었다. 토성이 발견되기도 전의 일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도로로 인해 토성 유구가 훼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행주산성은 이후에도 수난을 겪는다. 1991년 서울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돼 이듬해 400여m에 걸쳐 일부 복원된 토성은 상부에 탐방로가 설치돼 지면이 가라앉는 등 꾸준히 훼손돼왔다. 유적의 스토리와 동떨어진 이 탐방로는 방문객들이 토성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또 석성 발견 때 전쟁유물이 함께 출토된 점에 주목, 발굴에 앞서 전시시설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90년대 중반 일산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복수의 대학교와 박물관, 고양어울림누리 수장고 등에 분산돼 체계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선 급한 대로 정체성이 모호한 산성 내 건축물 중 하나를 임시전시시설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사료근거가 미흡한 가운데 건립된 행주산성 건축물들은 발굴철학을 수립하는 데 있어 반드시 풀고 넘어야 할 숙제다.
산성 경관 저해 요소인 행주대첩비 앞 계단과 광장을 비롯해 행주서원과 기능이 중복되는 '충장사'(이상 1970년 준공), 콘텐츠가 빈곤한 '충의정'(1977년), 엉뚱하게 들어선 국궁장(1986년) 등에 대해 개선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건축물대장에도 등재돼 있지 않은 해당 시설물들은 훼손 유적 및 지형 복구 차원에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이제라도 명확한 역사성 규명을 선행한 뒤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곽연구 분야 권위자인 심광주 서울시 문화재위원은 "문화재는 오래되고 화려하다 해서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성이 닿아있을 때 비로소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행주산성은 한강을 중심으로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중요한 기능을 했고, 특히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통해 당나라로부터 국토를 지켜내는 등 여러 역사적 레이어가 겹치는 곳임에도 그동안 콘텐츠를 살리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주산성이 지닌 역사성은 익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그 콘텐츠를 중심으로 복원·관리해 간다면 국가를 대표하는 전쟁유적지로서 위상과 가치를 회복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김우성·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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