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년 前 산부인과 찾은 이정분씨
유산 원했지만 9~10차례 '헛걸음'
마음 고쳐 낳은 딸 '보물'로 성장
관동갤러리 관장등 단골 방문객
어린이집·초교 단체관람도 인기
이정분(74·인천 중구 신흥동) 씨는 지금부터 약 48년 전 용동 큰우물 거리의 이길여 산부인과를 잊지 못한다.
"쥐구멍에 햇빛은 고사하고 바람 구멍도 없을 정도"로 생계가 막연하던 신혼 시절 얻은 아이를 유산하려고, 동구 송현동에서 한 시간을 넘게 걸어 이길여 원장을 만나러 갔지만 허사였다. 당시 이길여 원장은 "남편하고 같이 오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라며 20대의 임신부를 매번 돌려보냈다.
"통곡하고 싶을 정도로 목멘 소리로" 애원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9~10차례 '헛걸음'을 한 이정분 씨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엄마 인생을 땅 속에 묻더라도,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듬해인 1970년 딸을 출산했다. 20대에 미국에 건너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곳에 일자리를 얻어 정착해 사는 딸은 '엄마의 보물'이 됐다.
이정분 씨는 지난 1월 5일, 지인을 만나러 용동 큰우물 거리를 지나던 중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을 우연히 발견했다. 기념관 해설사에게 1969년 이 병원에서 겪은 사연을 들려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11일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에서 만난 이정분 씨는 기자와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고마움을 전했다.
"내가 뼈아플 때 만난 분이 이길여 원장님이에요. 제게는 박사님, 회장님이 아닌 원장님입니다. 이 거리를 지날 때마다 마음 속으로 '원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그 분 덕분에 소중한 딸을 얻었고,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지난 해 6월 문을 연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에 매월 평균 1천800명 가량이 찾아와 최근 관람객이 2만명을 돌파했다. 1950~70년대 산부인과 병원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인천 구도심 외진 곳의 좁은 기념관에 매일 60명이 다녀간 셈이다.
단체 관람은 총 방문객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개인 관람객 중에는 이 병원과 인연이 있는 이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
이길여 산부인과에서 직원으로 근무했다는 이영옥 씨를 비롯해 이민옥, 이순희, 조은남, 차형수, 김현자 씨 등이 기념관을 다녀갔다. 40여년 전 딸 셋과 아들 하나를 출산했다는 강명남씨, 1975년 이길여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는 전영복 씨, 1977년 자신이 태어난 병원을 찾아온 서승현 씨 등의 사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1958년 이길여 산부인과가 개원한 장소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건물을 그대로 살렸고, 병원 풍경과 장비를 그대로 복원해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중·장년층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과 밀랍 인형의 인기가 높다. 40~50년 전의 병원 대기실, 진료실, 분만실, 입원실 등이 똑같이 재현된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지인들과 공유하는 이들이 많다.
옛 병원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어린 자녀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인천 남구에 거주하는 김하늘(39) 씨는 "옛날 모습이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기분"이라며 "아이들이 부모 세대를 더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유익한 학습의 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단체 관람도 매주 1~2차례 진행된다. 어린이들은 부모님들이 태어났을 옛 산부인과 병원의 모습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우리나라 의료 환경 발전에 감탄한다. 개관 후 1년 간 단체 방문 기관은 63곳에 이른다.

인천 중구 관동갤러리 도다 이쿠코 관장은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단골 방문객'이다. 일본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이 곳에 함께 들른다. 일본어 통역을 직접 하며 안내한다.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앞으로 체험 전시를 확대하는 등 운영 다각화를 준비하고 있다. 초등학생 단체 관람을 활성화하고, 외국인 관람객 방문에 대비해 다국어 안내 책자를 제작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연중 무휴(명절 제외)로 운영되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