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주마의 길, 시마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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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군 도강준비 한다는 풍문 돌자
詩로 강도 백성 안심케한 '이규보'
몽군, 40여년간 수많은 양민 학살
무신정권 누구도 백성 구하려
군사 일으켜야함을 주창 못했다
나라가 강해야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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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장마가 계속되면서 폭우가 서울과 경기 북부에 집중되던 날, 강화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 때도 오늘처럼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무신정권 최우의 계획대로 1232년(고종 18년) 7월 6일, 그칠줄 모르는 장맛비 속에 수천척의 배가 강화도의 승천포에 접안했다. 하선한 10만여 명의 개경인들은 23대 왕 고종의 뒤를 따라 고려궁으로 향했다. 이 천도의 대열에 고려 당대의 문장가이며 고위관료인 이규보도 있었다. 그는 젊어 과거에 합격했지만 40이 넘어서야 최충헌의 천거로 관계에 진출했다.

이규보(1168-1241)는 여주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백운거사로 불리는 그는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대서사시 '동명왕편'을 남겼으며 8천여 편의 시문을 지었다고 전한다. 그의 아들 흠이 편찬한 '동국이상국집'은 이규보 문학의 전모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이규보는 옛사람의 문장과 문체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뜻을 새롭게 표현하는 시문으로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소동파의 시풍을 뛰어넘으려 했다.



이규보는 주마(酒魔)의 길과 시마(詩魔)의 길을 간 시인이다. 그는 술 없이는 시를 짓지 못했으며 시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었다. 술과 시를 탐익한 자신을 일러 주마와 시마에 잡혔다고 했다.

얼마나 술을 좋아했으면 서사문학 '국선생전'에서 술을 '국선생'이라고 극존칭으로 불렀겠는가. 얼마나 술을 좋아했으면 흔하디흔한 술병 하나를 얻어 '도앵부'라는 산문을 남겼겠는가. '술이 없으면 시도 멈춰지고/시가 없으면 술도 물리쳐지니 시와 술을 모두 즐기는 것으로/서로 만나 둘 다 가져야 하네/술이 시키는 대로 한 구를 쓰고/입이 시키는 대로 한 잔을 기울이니/어쩌다가 이 늙은이가/시벽과 주벽을 모두 갖추었네/… …/이로 인해 병 또한 깊어졌으니/바야흐로 죽은 뒤에야 비로소 쉬게 되리라'라고 노래한다.

얼마나 시 짓기를 좋아했으면 '논시'를 남겨 후대의 시인들에게 경종을 울렸겠는가. '요즈음 시 짓는 사람들은/시로 사람을 깨울칠 줄 모르도다/겉으로는 울긋불긋 단청하고/내용은 한때 산뜻한 것만 찾는구나/시의 내용이란 진리에서 나옴이라/되는대로 가져다 붙일 수 없는 일/진리는 찾기 힘들다하여/애써 겉모양만 곱게 다듬어/이것으로 사람들을 눈부시게 하여/내용이 빈 것을 가리려 하누나'라고 일갈한다.

'시벽'은 시 짓기의 고통, 시마에 든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한 시다. '나이 칠십이 넘어/벼슬도 재상에 올랐으니/글재간 부리기는 그만두어야 할텐데/왜 이리도 옛 버릇 버리지 못할까/… …/한번 들어 떨어질 줄 모르는 이 병은/ 마침내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네/날에 날마다 심장을 깎는 듯/그 얼마나 시를 짜내어야 하는가//온몸에 기름이 마르고/이제는 살점마저 남아 있지 않아/뼈만 앙상하여 그래도 시를 읊는/이 모양이야 정말로 우스워라//그 시라는 것도 뛰어나지 못하여/천추에 남길 것이 되지 못하니/나 스스로도 손뼉 치며 웃노라/그러나 웃고 나서 다시 시를 쓰네//아마 죽을 때까지 이러하리라/이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으리'라며 한탄하고 절망하는 이규보를 본다.

이규보는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역사의식에 의문을 갖게 한다. 강도 건너 김포 땅에 몽군이 진을 치고 도강준비를 한다는 풍문이 돌자 강도의 백성들이 동요한다. 그는 '오랑캐 종족이 아무리 완악하다지만/어떻게 이 물을 뛰어 건너랴/저들도 건널 수 없음을 알기에/와서 진치고 시위만 한다오/누가 물에 들어가라 명령하겠는가/물에 들어가면 곧 다 죽을 텐데/어리석은 백성들아 놀라지 말고/안심하고 단잠이나 자소/그들은 응당 저절로 물러가리니/나라가 어찌 갑자기 무너지겠는가'라는 시로 백성을 안심케 한다.

강도 천도 40여 년간 몽군은 고려 땅을 휘젓고 다니며 부녀자를 겁탈하고 성주를 도살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무신정권의 누구도 육지에 버려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창하지 못했다. 나라가 강해야 되는 이유다.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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