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헌법 변화된 시대상 반영 한계 노출
정부 주도탈피 권력구조 지방분산 목소리
문 대통령 "내년 6월 지방선거 개헌" 약속
촛불민심등 국민 여론수렴 공론의장 필수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해 30년째 지방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는 헌법을 지방분권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가 지방을 일방적으로 이끄는 정부 중심의 리더십이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만큼, 권력구조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형태의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기대를 더욱 키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최소한 지방분권, 국민기본권 확대를 위한 개헌에 합의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중앙 구조개편을 위한 개헌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지 모르나 지방분권과 국민기본권 강화는 충분한 공감대가 마련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개헌의 시점은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6월이다. 이번 개헌을 통해 1987년부터 30년째 이어온 '87년 헌법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재도약의 근본적인 틀을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마련돼 지난 30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현행 헌법이 변화된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민들은 세계화 시대에, 그리고 지식 정보화 사회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데, 헌법은 '민족국가'를 논하고 '산업사회 완성'을 필요로 하던 30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49년 이후 최근까지 60여 차례나 헌법을 고친 독일과 대비된다. 헌법이 낡아 정치와 경제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잘못된 시그널을 지속해서 주고 있는 만큼, 개헌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을 하겠다"고 했다. "국회 개헌특위를 통해서든 대통령이 별도의 정부 산하 개헌특위를 통해서 하든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며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국회가 구성한 개헌특위의 자문위원회도 소위원회별로 개헌안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촛불 정국과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무르익은 개헌 여론이 정계의 이런 움직임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 왜 지방분권형 개헌인가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적인 국가 운영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선 정부가 결정하면 지방이 획일적으로 그 결정을 따라가면 됐다. 그래도 발전할 수 있는 사회였다.
하지만 요즘 같은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이런 형태의 국가 운영은 오히려 발전의 저해요인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가 운영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가능하도록 지방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지방자치단체가 활동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지방의 행위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현행 헌법이 지방의 손발을 묶어놓고 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 등에서 보듯 정부가 '업무 과부하' 등으로 제대로 된 문제 해결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은 국가발전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의 발전은 지방 발전의 총합이라고 한다면, 현행 헌법이 국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지방의 손발을 풀어 지방이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 왜 30년째 '87체제'인가
30년 전 헌법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개헌 논의가 국민의 관점이 아닌 정치인들의 집권 측면에서 다뤄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집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개헌을 약속했다가도 말을 바꾸는 경우가 잦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990년 당시 3당 합당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민주정의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내각제 개헌을 추진키로 하고 각서까지 썼지만, 대선 출마 의지가 강했던 김영삼 총재의 반발로 무효가 됐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총재)와 자유민주연합(김종필 총재)이 선거연합에 합의하고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이 역시 공염불이 됐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발에 부딪혔고, 박근혜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 개헌을 공약했지만 집권 초기 경제 살리기가 우선돼야 한다며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탄핵 직전 개헌 카드를 꺼내 성과가 없었다.
# '지방분권형 개헌'을 위해선
지방분권형 개헌을 위해선 국민들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권교체를 이룬 촛불민심이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을 정치인들에게 맡겨놔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촛불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경험을 갖게 된 국민들이 개헌을 끌고 갈 수 있도록 다양한 공론의 장을 만들고, 광범위하게 여론을 형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단계적 개헌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개헌의 핵심이 돼야 할 '지방분권 강화' 등 권력구조 개편 작업을 먼저 진행하고, 다른 쟁점들은 추후에 다루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얘기가 나오는 내년 6월까지는 개헌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두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개헌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관계 재편' 차원에서 지방분권 강화 부분을 먼저 처리하고, 정부형태 등 다른 쟁점을 다루는 개헌은 추후 진행하는 식의 부분적·단계적 개헌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