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8]# 나는 # 조종사가 될 거야 - 네팔 히말라야 편

'절망' 담은 소년의 눈에서 '갈망'을 읽다

파일럿 꿈꾸는 14살 '먼질'… 날수 있을까, 현실을 박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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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던 먼질 비슈어커르마(14).

산골 담푸스 아랫마을, 호기심 가득하던 아이는 알코올중독 아버지와 지독한 가난에 지쳐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인 '최고봉 히말라야' 그들에겐 높이만큼 힘겹고 척박한 삶의 무대

6년만에 '사진첩' 들고 다시 찾은 그곳엔 버드나무같던 처녀가 뚱보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어떤 이에겐 생애 첫 사진이라는 것, 자신의 과거를 볼 수있는 영혼의 거울로 믿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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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질이 사는 담푸스 마을에서 담은 안나푸르나 산군. 그리고 마을 사람들. /김인자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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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질 비슈어커르마



"먼훗날 나는 조종사가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거야."

EBS <세계의 아이들> '눈의 아이 하늘을 꿈꾸다'를 통해 본 히말라야 언저리에 사는 먼질 비슈어커르마(14)의 일상을 시청한 후, 네팔로 날아가 먼질을 만나기 전까지는 조그만 개구쟁이를 상상했는데 이젠 제법 청년의 티를 내며 거짓말처럼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표정이 어둡고 다소 반항적으로 보이는 먼질(나는 먼질이 젊은 날의 제임스 딘을 닮았다고 생각했다)은 히말라야 산골마을에 살며 파일럿을 꿈꾸는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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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안나푸르나 산군이 눈앞에 펼쳐지는 담푸스 아랫마을로 먼질을 찾아 나섰다. '힐레'가는 날 전해줄 게 있어 '페디'에서 먼질의 엄마와 함께 본 후 나흘만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온통 우수로 가득한 표정의 먼질을 만났을 때 문제를 직감했지만 나는 말을 아꼈다.

먼질은 비행기를 보고 자신도 언젠가는 조종사가 되어 하늘을 날 거라고 나무로 깎은 모형비행기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계곡을 내달리던 TV속 호기심 가득한 그 아이가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말이 없었고 즉답을 피했다.

먼질은 도시로 간 누이를 제외하고 세 명의 어린 동생과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살았다. 길에서 만나 오두막으로 안내하던 먼질의 아버진 취해있었고, 가족들은 집에 없었다.

집은 비가 새는 두어평도 안 되는 곳에 침대 하나가 전부였는데 아무리 그럴 듯한 상상을 해도 저 좁고 누추한 공간이 다섯 가족의 보금자리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화를 원했지만 아침부터 술에 절어 있어 그와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먼질의 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던 마을 언덕에서 나머지 가족을 만났다. 비가 내린 지난밤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이들과 밖에서 밤을 보냈다는 먼질의 엄마, 어떤 이야기에도 그들은 웃지 않았다. 설산의 특권을 누리고 사는 그들의 재산목록 1호가 낙천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다.

파일럿이 되려면 학교에도 가야하고 열심히 공부해야하지만 하루하루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먼질에게 파일럿은 꿈일 뿐이라고 비웃는 듯했다. 세상에는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이 많지만 개인사거나 문화적인 차이로 방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도무지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 먼질의 현재가 그래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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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 하면서 만난 히말라야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나는 TV에서 본 먼질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먼질,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은 아직 유효하니?" 먼질이 나를 쳐다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 속엔 '그럼요, 꼭 그렇게 되고 말 거예요. 아니 되고 싶어요'가 담겨있었다. 먼질을 웃게 할 순 없을까.

이제 그 여행은 끝났지만 다음에 보다 좋은 모습으로 만나기 위한 내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상의 최고봉 히말라야를 부러워하지만 히말라야 높이만큼 힘겹고 척박하게 사는 그들의 고단한 삶은 생각하지 못한다. 이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내가 사람여행을 포기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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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질이 사는 담푸스 마을에서 담은 안나푸르나 산군. 그리고 마을 사람들. /김인자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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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의 반가운 재회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여러 번 방문하게 되는 나라가 있는데 내겐 비교적 접근성이 용이한 뉴질랜드, 호주, 인도, 네팔 등이 그에 속한다. 그중 네팔은 조금 특별한 경우다. 6년 만에 담푸스 마을을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보니 전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묵은 사진첩을 열어 서른 컷의 사진을 골라 확대 현상 코팅까지 마치고 보니 다양한 연령대는 물론 가족사진, 단체사진, 독사진도 있다.

안나푸르나 산군들을 가까이에서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도 그렇거니와 전통을 이어가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히말라야마을이어서 그랬는지 나는 담푸스 마을이 푸근하고 좋았다.

며칠 지내는 동안 날마다 아이들과 가가호호 방문하며 밥과 차를 얻어먹고 일손이 바쁠 땐 뺨이 붉은 아기를 돌봐주며 사진을 찍어주던 그 계절은 소가 묵은 밭을 갈고 유채꽃과 복사꽃이 피는 봄이었다.

담푸스에 도착 다음 날 숙소 가까운 곳부터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과 하나둘 재회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수배하는 건 사진만으로 충분했다.

6년의 시간, 사진 속 누구는 세상을 떴고 누구는 외화벌이를 갔다하고 또 누구는 도회지로 갔단다. 버드나무 같은 처녀는 뚱보아줌마가 되고 걸음마를 하던 아가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부재한 사람은 가족에게 전달했고 가족들은 그 사진으로 없는 가족의 그리움을 대신했다.

한 명씩 찾을 때마다 자신도 몰라보게 변한 아이들 웃음으로 마을은 시끌벅적했고 사람들은 예전 모습을 보려고 줄을 섰다. 사진의 위력 때문인지 처음 본 사람들도 모델을 자청했고, 셔터를 누를 때마다 언제 다시 올 거냐는 질문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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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모아 '나마스떼'로 인사하는 히말라야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

이렇게 다시 가는 곳이 있는가하면, 세상은 넓고 가야할 곳은 많으니 특별한 연이 없다면 재방문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들이 자처했다고 해도 사진을 찍다보면 찍은 사진을 인화해주고 가면 좋겠단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지난 여행 때 준비한 이들의 사진은 평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듯했다.

오지라면 카메라나 사진관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어서 현실적으로 외부사람이 아니면 어렵고, 그 밖에도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흔한 일이지만 어떤 이에겐 내가 찍어준 사진이 생애 첫 사진이라는 것, 그리고 사진이야말로 자신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영혼의 거울로 믿기 때문인 듯.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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