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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사의 눈은 매처럼 예리하다. 감정에 휘둘리는 법이란 없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축구 도박사들은 더욱 그렇다. 특히 축구 승패와 관련한 그들의 예측은 논리와 경험이 바탕이 돼 신중하고, 그래서 적중률도 높다. 잘못된 예측은 파산을 의미한다.

유럽 최대 스포츠 베팅 사이트 bwin은 이번 F조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의 승리에 1.2배를 책정했다. 반면 한국이 승리할 경우 배당은 12.5배였다. 1만원을 베팅하면 독일이 승리할 경우 2천원, 한국이 이길 경우는 11만5천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영국 최대 스포츠 베팅사이트 베트 365와 레드 브룩스는 한술 더 떴다. 한국의 2대0 승리엔 80대1, 독일의 7대0으로 이기는 경우 66대1로 배당을 책정했다. 모두 불가능한 점수라는 뜻이지만, 한국이 2대0으로 이기는 것보다 독일이 7대0으로 이길 확률을 더 높게 본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는 징크스라는 게 있다. 월드컵 축구도 마찬가지다. 월드컵 '우승팀은 그다음 월드컵의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른바 '우승팀 징크스'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2무 1패로, 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승 2패로 조별리그서 탈락했다. 예리한 도박사들이 이런 징크스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세계 축구에는 두 종류가 있다. 독일 축구와 그 외 나라의 축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지역 예선 10전 전승을 기록했던 독일 만큼은 징크스를 피해갈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스웨덴, 멕시코와의 두 경기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펼쳤던 한국축구가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진출한 것을 뛰어넘는 대이변이다. '역시 공은 둥글다'는 게 다시 입증됐다. 경인일보 인터넷판에는 '손흥민·조현우·김영권, 눈물씻어낸 드라마 주인공'이라는 제목을 달아 선수들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다. 잘 싸웠다! 한국 축구.

蛇足-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우리 국민 모두 한국의 2대0 승리에 1만원씩 걸었다면, 오랜 역사의 베트 365와 레드 브룩스는 이번에 파산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