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바지 입고 동료와 '휴대용선풍기' 공구
점심시간엔 구내 식당·사내 휴게실 만원
■출근 복장 간편해지는 회사원들
"간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출·퇴근합니다."
화성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김모(31)씨는 가뜩이나 더운데 목까지 조여오는 셔츠차림에서 비로소 해방됐다.
30℃가 훌쩍 넘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될 것이라는 예보에 회사가 간편한 티셔츠 착용도 괜찮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김씨는 "주변 회사들을 보면 반바지 차림도 종종 보인다. 매년 날씨가 뜨거워지면서 티셔츠·반바지 차림이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배터리가 내장된 휴대용 선풍기 등 '쿨링 아이템'은 직장인들 사이에 없어선 안되는 필수 품목이 됐다.
인천의 한 대학교 교직원인 김민혁(39·가명)씨는 최근 사무실 6명의 동료들과 뜻을 모아 휴대용 선풍기를 공동구매했다.
김씨는 "사무실 에어컨이 더위를 감당하지 못해 아예 동료들과 함께 단체로 주문했다"며 "사무실을 벗어날 때도 항상 들고 다닐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에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풍경도 바뀌고 있다. '맛집'과 '수면카페'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구내식당과 사내 휴게실이 때 아닌 특수를 맞이한 것이다.
성남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 재직 중인 박모(28)씨는 "웬만하면 회사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 회사 측에 휴식을 위한 편의시설 개선도 요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혹서기 매뉴얼 맞춰 1~3시 휴식
대형쇼핑몰·숙박 서비스업계 즐거운 비명
■가마솥 더위에 울고 웃는 산업계
야외 작업이 많은 산업현장은 무더위와의 사투에 돌입한 상태다.
건설업계는 일찌감치 혹서기 매뉴얼에 맞춰 1~3시 폭염시간대 휴식을 하는 등 현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조산업은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여름철 에어컨 대란을 막기 위해 겨울에도 공장을 돌려 생산·판매하는 등 분산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또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제습기와 공기청정기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TV 등 기존 가전제품 라인을 줄이는 추세다.
이들 제품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주가마저 들썩여 '폭염주'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옷가게, 음식점, 멀티플렉스 등을 갖춘 대형 복합쇼핑몰들은 즐거운 비명이다. 야간 쇼핑족 증가로 즉석 식품뿐만 아니라 맥주, 과일, 가전제품의 판매가 전년 동기대비 20~30% 늘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자연환경에 열악한 전통시장은 점점 더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해수욕장과 계곡, 숲 등으로 떠나는 이른 피서족에 숙박 등 서비스업계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아열대 기후로 급격히 변하면서 바뀌는 우리나라의 과수농업은 우려스럽다.
남부지방에 국한됐던 아열대성 과일들이 중부지방까지 북상해 우리의 식탁을 점령하는 반면 기존 배나 사과 등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어서다. 폭염이 대한민국 농사지도를 바꿀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요리·설거지 안하고 '간편하게' 한끼 해결
외출대신 집에서 온라인쇼핑몰 통해 결제
■앞치마 벗고 배달음식 찾는 주부들
폭염이 이어지면서 요리도 고역이 됐다. 가스불 앞에 서면 땀이 저절로 맺히고 설거지도 중노동이다. 주부들은 배달음식을 시키고, 집에서 온라인 쇼핑을 즐기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집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온라인쇼핑몰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올여름 '쿨링템(쿨링+아이템)' 중 최고는 손선풍기다.
GS홈쇼핑이 마블과 공동 기획해 내놓은 '어벤져스 손선풍기'는 비교적 '고가'임에도 올해 10만대가 넘게 팔렸다. 배달음식 업계도 호황을 맞았다.
무더위에 요리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음식을 시켜먹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배달음식 주문량은 온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게 배달 앱 업체들의 설명이다.
경로당·마을회관에 설치한 '무더위쉼터'
노인들 접근 어렵고 분쟁탓 갈 곳 잃기도
■사회문제로 타오르는 폭염
정부가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공용시설에 무더위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접근성과 관리자 부재로 이용 불편등을 겪고 있다.
경기·인천 지역 무더위쉼터는 7천603곳(경기 6천917곳·인천 686곳)이다. 이중 상당수 쉼터는 이용자 간 분쟁이 발생해 폐쇄되는 등 '폭염 피난' 사각지대에 놓이는 노인들이 발생하고 있다.
수원 권선동의 한 아파트 경로당에선 노인회장이 경로당을 임의로 개방하지 않거나 일부 노인 출입을 금지하는 등 분란을 겪고 있다.
인천에서는 강화에 무더위쉼터 232개소가 마련돼있지만, 옹진엔 20개소만 지정돼있어 접근성 차이도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재흥·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