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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생전 모습. 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女인권 앞장 '독립운동가' 재조명
별감 하상기와 결혼 인천과 인연
미국 유학 女 최초 '문학사' 학위
파리강화회의 가는 길 독살 당해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스승이자 항일 운동과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헌신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삶이 인천에서 재조명된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은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삶을 조명하는 공연을 추진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인천시가 예산을 지원하고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아 준비 중이다.

김란사는 인천 감리서(조선 말기 개항장 행정과 대외관계의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 별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하상기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다.

1872년 평양에서 출생한 김란사는 1893년 하상기와 결혼하며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1900년 미국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 문과에 입학해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김란사는 여성과 민족 문제를 고민했다. 이화학당 교사로 여성교육에 힘쓰는 한편 성경학교 설립, 부인 계몽교육, 독립운동 등 사회활동에 앞장섰다. 이때 유관순을 가르쳤다. 교회에서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여성들을 위해 영어와 성경도 가르쳤다.

김란사는 조선의 위기 상황에서 여성도 배워야 하며, 여성이 의식을 갖춰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자주독립 국가로의 길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김란사는 여성의 교육을 비판하는 개화파 윤치호를 비판하며 쓴 기고문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정규 고등학교 졸업생이 그저 요리나 바느질하는 법을 알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고 있다"며 "그 학교들의 목적과 방향은 슬기로운 어머니, 충실한 아내 및 개화된 가정주부가 될 수 있는 신여성을 배출하는 것이지 요리사나 간호원, 침모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고종의 통역사이기도 했던 김란사는 1919년 파리국제강화회의 한국대표로 비밀 파송 중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 스파이에게 독살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1995년 '여성의 애국정신을 고취했다'며 김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면서 '하란사'로 성명을 표기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란사가 당시 외국 문화에 따라 남편의 성을 따랐던 때문이다. 김란사는 올 초에야 보훈처의 변경으로 본명을 되찾았다.

이러한 극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김창수 인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인천 개항장 도시서사자원 활용방안' 연구에서 '김란사와 하란사' 이야기를 뮤지컬로 제작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인천이 열강이 주둔한 가운데서도 식민지의 저항 정신이 적극적으로 발휘된 곳이라는 것을 부각하면서 그중에서도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김란사의 이야기를 주목하고자 했다"며 "김란사 뿐만 아니라 당시 인천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단체들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