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인천연구원이 22년 역사상 처음으로 내부인 출신 원장을 배출했다.

그동안 인천시장의 입맛에 따라 임명한 외부인이 인천연구원을 이끌어 왔다는 점에서 민선 7기 첫 인천연구원장의 내부 임용은 주목할 만하다.

인천연구원이 '정권의 시녀'라는 비판을 뛰어넘어 독립성 있는 시정연구기관으로 거듭날 적기라는 기대감이 크다. 인천연구원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한다. → 편집자 주

1996년 36명 규모 어설프게 '첫발'
100% 市 출자 과제방향 제한받아
역대 원장 교수·부시장 출신 국한
유능한 인력 이탈 등 문제 겪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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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구원은 1996년 4월 최기선 시장 시절 '인천21세기연구센터'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시정 연구기관이다. 연구원은 다음 해 '인천발전연구원'으로 개칭됐고, 올해 4월 인천연구원으로 다시 한 번 이름을 바꾸기까지 21년 동안 '인발연'으로 불려왔다.

초기 인발연은 당연히 외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기선 시장은 주변 인맥을 동원해 인천 출신의 김학준 당시 단국대 이사장을 삼고초려 끝에 초대 원장으로 '모셔왔고', 김학준 원장이 초기 조직과 연구 체계를 갖췄다.

지난 17일 제16대 원장으로 취임한 이용식 원장이 바로 이때 '창립 멤버'로서 인발연과 인연을 맺었다.

연구원은 초기 4개 연구부와 1개 사무국 체제의 정원 36명 조직으로 시작했다. 출범 초기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이용식 원장은 2006년 '인천발전연구원 10년사'에서 "연구과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논의나 지시(?)도 없었다.

자료실도 없었고, 컴퓨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없었다"고 개원 초기 모습을 설명했다.

1996년 첫해 자체 연구과제 8건과 수탁 연구과제 4건의 성과로 시작한 연구원은 2017년 기초과제 15건, 정책과제 32건, 기획과제 43건, 현안과제 8건, 수탁과제 4건 등 총 102건의 연구실적을 냈다. 조직체계도 연구기획본부와 4개의 연구실, 4개의 연구센터 등 조직으로 괄목상대했다.

하지만, 인천연구원은 인천시 100% 출자로 설립된 탓에 예산과 조직 운영, 연구과제 방향 등에서 인천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역대 원장의 이력만 살펴보더라도 대학교수나 인천시 부시장 출신이 전부였다.

연구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미리 설정하고 결과를 내놓는 일이 벌어지고, 유능한 연구인력의 이탈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경험이 있다.

설립 22년 만에 내부인 원장 시대를 맞은 인천연구원이 이제부터 독립성 확보를 위한 '개혁'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가 크다. 양적인 확대에 맞춰 질적인 성장을 동시에 이뤄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시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 아닌 시민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