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투병중 아내 웨딩드레스 소원
건보·예랑요양원 등 십시일반 준비
"형편상 미뤄와… 전날 잠도 설쳐"
인천의 한 교회에서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6일 낮 12시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있는 하나교회에서는 이욱(67)·김정희(58) 씨 부부가 하객들의 축복 속에서 20여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빠듯한 집안 형편 등으로 결혼식을 미뤄왔던 이 부부에게 2년 전 불행이 닥쳤다.
아내 김씨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고 만 것이다. 혈소판감소증과 중풍 등을 앓고 있는 아내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장기요양1등급)에 이르러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식 없이 홀로 아내를 돌보고 있는 남편 이씨는 언제 생을 마칠지 모르는 아내에게 늦었지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혀주는 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아내가 2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눈을 마주치기 시작해 정말 기뻤다"며 "결혼식을 할 거라고 알려주었더니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아내 김씨가 있는 예랑요양원(대표·이흥석)을 방문해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천남동지사(지사장·조성희, 이하 공단) 직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이들의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뜻을 모았다.
건강보험제도에서 시행 중인 호스피스 완화 의료 등을 홍보하기 위해 직원들이 만든 학습 동아리 '호연지기'가 결혼식 준비에 앞장섰다.
홍순애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천남동지사 장기요양센터장은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위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결혼식을 준비하게 됐다"며 "월급에서 떼는 사회공헌기금으로 하객들의 음식을 마련하는 등 공단 직원 모두가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하나교회(담임목사·하상훈) 측이 결혼식 장소를 마련해주고 하상훈 목사가 직접 주례를 봤다. 또 하나교회 히도르 하나봉사단은 음식을 손수 장만해 하객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축복 기도는 예량교회 신한식 목사(예량요양원)가 맡았다.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에덴웨딩(대표·정인희) 측이 후원하고, 새인천요양병원(병원장·유상로)에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자 앰뷸런스 차량과 전문간호사 등을 지원해 부부는 안전하게 결혼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은 테이크어픽스튜디오(대표·양태서), 부케 등은 더클로이 플라워&카페(대표·이유정)가 지원하는 등 곳곳에서 기부가 잇따랐다.
아내 김씨와 함께 생활하는 요양원 어르신들, 후원·봉사자, 공단과 지역 장기요양원 임직원 등 100여명이 하객으로 참석해 부부의 결혼을 축하했다.
신랑은 와상 휠체어를 탄 아내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남편 이씨는 "결혼식 날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어젯밤에는 잠도 안 왔다"며 "요양원과 건강보험공단에 정말 감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동아리 호연지기 회장인 공단의 박선주 과장은 "남편분이 생계유지와 요양원비 마련을 위해 틈틈이 일하면서도 정성껏 아내분을 보살피고 있다"며 "아내분이 더 건강해져서 부부가 오래도록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 두 분의 결혼식을 위해 힘을 보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