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납치 등 압박속 344일째 농성
반성·계획 없는 '껍데기 약속' 보며
이재용씨 대국민사과 날부터 단식
언론도 눈감은 강남역 철탑위 항거

문득 대학 초년생 시절 기억이 떠오른 것은 지금 또 한 명의 전태일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김용희씨는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삼성에서 해고당했고 이를 알리자 명예훼손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폭력배로부터의 구타, 삼성 직원에 의한 납치, 성추행이란 무고, 북한 간첩으로의 조작 시도 등도 잇따랐다. 김씨는 현재 삼성사옥이 있는 강남역 사거리 25m 높이의 CCTV 철탑 위에서 34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65㎡(0.5평)에 불과한 철탑 위는 매우 비좁아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허공으로 삐져나온다.
별로 놀랄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다. 삼성이 떡값을 돌려 검사들을 어찌 관리해 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설립 요청이 낮은 수준의 양형을 위한 수순으로 이해되는 것은 그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법을 만지작거리는 부류들이 소위 떡검과 뭐 그리 다르겠느냐는 혐의가 퍼져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재용은 지켜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인 약속을 했다. 수준 역시 구체적인 반성도 계획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이러한 사과를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준법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바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개라 하겠다.
언론 또한 사법계와 그리 다를 바 없다. 삼성 비판 내용의 칼럼을 썼던 필자들이 어떻게 필진에서 배제되는지 우리는 익히 목도 한 바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언론이 광고를 통해 삼성에 길들여 지고 있는 실상은 바로 그 지점에서 폭로되었다. 현재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이 주류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까닭도 그러한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게다.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질긴 사건을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 기자들이 여태 놓치고 있을까. 그가 꿈꾸었던 노동자의 단결권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영민한 기자들이 설마 모르고 있을까.
일찍이 이문열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옹호 논리를 다음과 같이 펼쳤던 바 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예는 지극히 사소하고 상식적이어서 얼른 이해가 안 될 테지만, 조금만 기본적인 것으로 눈길을 돌리면 사태는 명백하다. 나치의 법, 또는 스탈린이나 중남미의 법을 보아라. 법조문에는 그 어느 것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사회의 이상(理想)이 집약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결정하는 것은 다만 그 적용을 결정하는 어떤 흐름뿐이다'('약속', 1982). 이문열은 아마도 전두환·노태우 일당이 법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당대 현실을 감싸고 싶었으리라.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건대 현재의 흐름에 순응하는 이들은 전두환·노태우의 이름 대신 삼성과 이재용의 이름을 품고 있으리라.
옴짝달싹 못할 흐름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김용희씨가 전태일 열사와 다른 점은 죽음 대신 지상을 떠나 25m 허공 위로 올라갔다는 사실뿐이다. 그를 접견한 의사는 "당장 지상으로 내려가야 할 정도로 건강이 심각하게 좋지 않다"고 소견을 밝혔다. 나는 그의 모습 위에 전태일 열사의 모습을 겹쳐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와 지상 사이의 허공을 채워 나가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대학생 시절 내가 되새겼던 미래의 내 모습이며, 저 야만적인 흐름에 공모하지 않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