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접착제 탓 뜯더라도 '잔여물'
고급 용도 다시 쓰인 것은 10% 뿐
유가 낮아지면서 효율성도 떨어져

여기에 수출길이 막혀 재활용 페트가 과잉 공급되면서 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곧 플라스틱을 수거하지 않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 현상의 이면에는 재활용이 어려울 정도로 페트병을 만들고 국산 재활용 원료를 외면한 '생산'·'활용' 문제가 있다.
페트병은 제대로 재활용하기만 하면 석유를 쓰지 않고도 생활필수품을 생산할 수 있어 '도시의 유전'(油田)으로 불린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이 땅에서 도시유전을 채굴하기 위한 과제와 현실을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짚어본다. → 편집자 주
12일 찾은 국내 한 플라스틱 재활용 업체의 마당에는 작업을 하지 못한 압축 플라스틱이 이중삼중으로 수십 개 쌓여 있었다. 세척 후 분쇄해 플레이크(Flake)로 만들어져야 할 플라스틱이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유가가 낮아지면서 가격이 낮아져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상황은 이런데 가정에서 수거된 플라스틱은 매일 같이 공장으로 들어왔다.
막상 재활용 공정에 들어가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재활용 할 수 없는 페트병 라벨을 제거해야 하고, 제거하더라도 라벨 접착제 잔여물이 남아 고품질의 재활용 페트를 생산할 수 없는 상태다.
재활용 페트 업계는 재활용이 어려운 국내 페트병과 재활용 페트 대신 석유에서 갓 뽑아낸 플라스틱을 선호하는 문화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 2018년 국내에서 생산된 페트병은 모두 29만7천222병으로 그 중 23만6천717병이 재활용됐다. 10병 중 8병이 재활용된 셈이지만, 이 중 '고급' 용도로 재활용된 것은 전체 생산량의 단 10%(2만8천601병)에 불과했고, 나머지 70%(20만8천116병)는 중·저급 용도로 활용됐다.
고급과 중·저급은 페트병을 분쇄해 뽑아낸 섬유의 길이로 구분하는데 중·저급 재활용 페트는 모가 짧은 단섬유지만, 고급은 장섬유를 뽑아낼 수 있다. 단섬유는 짧아 옷감 직조가 어렵고, 일반 솜과 같은 내장재로만 쓰인다.
한국에서 재활용되는 페트병 대부분이 중·저급에 머물고 있는 건 생산된 페트병 자체가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음료 등 대기업이 생산하는 페트병 라벨 대부분은 강한 접착제를 사용해 뜯기가 어렵고, 뜯더라도 접착제 잔여물이 남는다. 이런 상태로 페트를 분쇄하면 분쇄물인 '플레이크'에 이물질이 남아 중·저급으로 밖에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최근 들어 롯데칠성음료도 라벨을 붙이지 않아 재활용이 쉬운 무(無) 라벨 제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극히 일부 제품군에 불과하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