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 알리 복귀전 첫패배 기자 고약한 질문
독설인터뷰 유명 팔라치·토머스 언론 전설
얼마전 與 대표 욕설에 언론사 해명성기사
'기자가 질문을 안하면 대통령도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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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 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1971년 3월8일 미국 뉴욕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세기의 복싱 대결이 펼쳐졌다. 챔피언 조 프레이저와 도전자 무하마드 알리의 헤비급 세계타이틀전. 4년 전 베트남전쟁 징집을 거부해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시민권까지 제한받았던 알리에게 이날 시합이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3년이 넘는 긴 재판에서 마침내 무죄선고를 받은 뒤 치르는 복귀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판정패. 생애 첫 패배이기도 했다. 영혼이 쏙 빠져나간 듯 탈진하고 상심한 상태로 라커룸으로 향하는 알리를 기자들이 뒤쫓았다. 그리곤 집요하게 묻는다. "이긴다 해놓고 실컷 두들겨 맞았군요.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알리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전 세계 주요 권력자들을 인터뷰한 이탈리아 언론인이다. 상대를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리는 질문과 독설로 유명했다. 1972년 키신저 당시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으로부터 "베트남 전쟁은 실패한 전쟁"이라는 놀라운 '자백'을 받아냈다. 1979년 이란혁명을 이끈 종교지도자 호메이니와의 인터뷰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진행됐다. 6시간에 걸쳐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벌였는데 팔라치는 '현존하는 이란의 신'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닙니까?"라며 대놓고 물었다. 리비아 최고권력자 카다피와의 인터뷰에선 "대령님이 하는 걸 봐선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하는 줄 알았네요"라고 비틀었다. "가난한 국민들의 참상을 볼 때 어떤 느낌입니까?"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에게 날린 직격탄이다.

지난 201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헬렌 토머스는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또는 '고정자산'으로 불렸다. 50년 긴 세월 동안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10명의 미국 대통령이 그녀의 까칠하고 배려라곤 없는 질문을 받아내야만 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베트남 전쟁을 끝낼 비책이 뭡니까?" (닉슨), "미국이 그라나다를 침공할 수 있는 권리가 도대체 뭡니까?" (레이건), "당신이 말을 에둘러 한다는 평판이 있는데 결정을 잘 못 내리기 때문입니까?" (클린턴), "그동안 정부가 밝힌 이라크전쟁의 원인은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뭡니까?" (아들 부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언제 철군할 겁니까? 왜 계속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까?" (오바마).

얼마 전 서울시장의 장례식장에서 어느 기자가 집권여당 대표에게 질문을 했다가 우리 정서상 가장 심한 욕설을 들었다. '기자는 쓰레기'라는 뜻의 단어가 이미 보통명사가 된 마당에 이보다 더한 치욕이 어디 있으랴마는 욕설을 내뱉은 당사자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공인 중의 한 명인 여당 대표인만큼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더 아연실색케 한 것은 기자가 소속돼 있는 언론사의 태도다. "의도를 갖고 고인을 모욕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질문은 아닌데 어제부터 여러 상황에 비춰 유족 측이나 당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에 누적된 감정이 그 질문을 계기로 촉발된 거 같은데 추모일색으로 흘러가는 건 문제가 아니냐고 기사를 썼으니 참고하시라"(미디어오늘, 7월10일)고 했단다. 언론이 언제부터 이렇게 너그러웠던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했던가.

이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는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또 정치적 지향이 어떠한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이 입증한다. 언론과 정치가 놓여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극단적 이분법도 유난스럽지 않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손가락질 해대도 언론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똑바로 쳐다보고 제대로 질문하기다. 질문하지 않는 언론이야말로 '기레기'고 사회악이다. 대통령에게 뼈아픈 질문을 주저치 않는 헬렌 토머스에게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왕이 된다." 그날 언론이 '후레자식'이 된 현장의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정말 걱정스러웠던 것은 이후 아무도 다시 질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끝을 보는가 싶었다.

/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 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