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낮은 곳에/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의 도입부다. 한 번 두 번 소리 내 낭송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면 이내 지치고 힘든 나를 품어주는 섬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가슴에 간직된 '그래도'란 섬이다. 이 시는 삶이 나를 속이고 지치고 힘들게 해도 따뜻한 위로와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섬은 혼자 떠 있는 것 같지만 바다 밑으로는 연결돼 있다. 사람도 혼자인 것 같지만 마음이 연결되면 결코 혼자가 아니다. 문제는 마음의 연결이 쉽지 않다는 것. 수많은 오해와 갈등, 의심과 편견, 넘겨짚음으로 인해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많다. 그때 속으로 외쳐보는 이 말 '그래도'는 마음을 편안히 긍정적으로 이끄는 처방이 깃들어 있다.
필자는 몇 년 전 연이어 전신 마취 수술을 3번이나 하게 됐다. 처음엔 요로결석으로 생긴 돌, 그 다음 해에는 왼쪽 어깨에 석회가 굳어 생긴 돌, 또 그 다음 해에는 오른쪽 어깨에 석회가 굳어 생긴 돌 등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물론 심한 통증이 뒤따랐다. 당시 담당 의사로부터 '돌이 많이 생기는 체질'이란 말을 듣고 '성당에 나가지 말고 절에 다닐까'란 농담으로 잠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그래도'란 말이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수술이 잘 됐고, 그래도 실비보험 혜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그래도 내 몸을 잘 알게 돼 건강관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도 인생의 가치관을 건강으로 1순위를 바꿀 수 있었고, 그래도 온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도 병실에서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래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감사와 포용력을 갖게 됐고, 그래도 나 이외 타인의 고통에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고, 그래도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됐고, 그래도 '사람이 우선'이란 휴머니즘을 간직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런 변화는 '그래도'란 아름다운 마음의 언어와 더불어 '덕분에'란 절친한 친구를 얻게 되는 전화위복의 경험이 됐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일상의 모든 일에서 '때문에'란 통상적 변명을 내세우기 보다는 '그래도' 또는 '덕분에'란 긍정의 언어로 삶의 지혜를 발휘하면 어떨까. 모든 근심에서 '그래도'를 지렛대 삼아 우리의 삶을 가꾸며 지탱해 나가길 제안해 본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