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시장의 전략 '대체지 확보'로 생각했는데
사전조율도 없이 자체매립지 발표 주객전도
예전 김포·영종 해안매립장 계획에서 단서
인천 안떠날 진실에 일갈… 자충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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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지난해 9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을 들고 나올 때부터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대체 매립지 확보가 대전제이겠거니 생각했다. 자체 매립지 조성은 압박의 수단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경계가 흐려졌다. 급기야 1년 만에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일 박남춘 시장이 인천시만의 자체 폐기물매립지 조성과 소각장 증설 계획을 공식발표한 이후의 상황은 익히 아는 바다. 야당은 물론 같은 당 국회의원과 기초지자체장들까지 분노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조차 사전조율 없이 후보지를 발표했다고 비난한다. 아무리 봐도 자충수다. 왜 박 시장은 이렇게 스스로를 외통수로 몰아넣는 것일까. 왜 이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에 정치적 명운을 거는 걸까.

어쩌면 아주 오래전 신문기사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1987년 9월 19일 동아일보 6면 머리기사다. '정부는 경기도 김포·영종지구에 1백50년 이상 매립 가능한 2천4백만 평 규모의 수도권 대단위 해안매립쓰레기장을 건설키로 했다. 환경청이 18일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최종확정한 '수도권 쓰레기광역해안매립계획'에 따르면 1단계로 김포지구의 간척농경지 6백10만평을 사들여 89년부터 쓰레기장으로 사용하고, 2단계로 영종도와 강화군 길상면 사이 공유수면을 92년부터 사용한다는 것.(중략) 영종지구 매립장은 내년에 영종도 앞바다를 쓰레기 매립예정지구로 고시, 92년부터 1백20년 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후략)'.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6백10만평 김포지구'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예정지구로 남겨져 있는 제4매립장까지 포함해 1천979만㎡에 달하는 지금의 수도권매립지 전체 규모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반면 김포지구 3배 크기로 1992년부터 2112년까지 120년 사용 계획을 세웠던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 공유수면 '영종지구'는 신공항 건설 추진으로 없던 일이 됐다. 2개 지구를 합해 150년을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구사용'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체 계획면적의 75%를 차지하는 영종지구의 취소는 이런 원대한(?) 꿈의 소멸로 해석됐다.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유령'이 여전히 수도권매립지를 떠돌고 있음을 확인한 건 지난 2010년을 전후해서다. 2009년 6월 조춘구 당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이 매립지 영구사용의 필요성을 주장하더니 이듬해 7월엔 공사 고위 관계자가 영구사용을 기정사실화 했다.

'(전략)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오는 2016년 매립기간이 종료되는 수도권매립지의 대체 부지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인천의 매립지를 사실상 영구 사용하는 방향으로 내부방침이 정해졌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관계자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3, 4매립장을 사용한 후 1매립장을 순환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 최소 100년은 인천 매립지 이전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쓰레기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데다 대체 매립지를 찾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인천 매립지를 영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후략)' (머니투데이, 2010년 7월 23일). 그 뒤 2015년 4자 합의 때도, 지난해 대체 매립지 선정 용역의 발표 연기와 '밀봉' 때도, 폐기물 전처리시설 건설과 반입총량제 도입 논란 때도 유령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4자 협의체 합의'와 '대체 매립지 공모'라는 기존의 프레임을 깨뜨리자 비로소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야 그 정체를 확연히 드러낸 매립지의 유령은 100년이고 200년이고 인천 땅을 떠나지 않고 버틸 심산이다. 과연 인천시장이 "그것이 여러분이 외치는 정의고, 공정이냐?"고 일갈할 만하다. 진실과 대면했음에도 말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인천시장으로서 침묵과 방관과 회피를 택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모든 궁금증이 풀린다. 또 어찌 알겠는가. 박 시장의 자충수가 대마(大馬) 잡는 승부수로 바뀌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지.

/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