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개 서체'로 유명 전정우 작가
폐교 빌려 20년간 '미술관 둥지'
'무상 기증' 강화군과 협상 결렬
郡, 공공성 강화 명분 필요 입장
120가지 서체로 쓴 천자문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서예가가 인천 강화도에 터를 잡은 지 20년 만에 지자체와 갈등을 빚다 자신의 작품을 모두 갖고 타지로 떠났다.
강화군 하점면 강후초등학교 폐교 건물을 빌려 미술관을 운영한 심은(沁隱) 전정우 작가는 최근 자신의 대표작인 '120가지 서체 천자문 720종'을 포함한 작품 수천여점을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 전정우 작가는 현재 미술관을 모두 비우고 강화를 떠난 상황이다.
인천시교육청 소유였던 폐교 건물은 강후초 1회 졸업생인 전정우 작가가 2000년부터 빌려 심은미술관으로 운영했다. 2017년 매각이 추진돼 폐관될 뻔하다가, 지역 예술계가 만류하면서 인천시가 학교 부지와 건물을 사들여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인천시와 강화군은 전 작가의 천자문 등 유명 작품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고자 심은미술관을 접경지역 문화재생사업에 포함했다. 국비 20억원과 시비 10억원을 확보한 상태이고, 천자문서예관과 함께 전 작가의 작업공간, 야외 편의시설 등을 갖춘다는 구상이다.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강화군과 미술관을 운영하는 작가 측과 협의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갈등이 발생했다.
강화군은 120가지 서체 천자문 등 주요 작품을 모두 무상으로 기증해 달라고 전 작가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전 작가 측은 강화군이 무리한 기증 요구를 한다면서 일부만 기증하고, 일부는 임대해 전시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작가는 "강화군 계획상 작품 전시 공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고, 내 작품으로 인해 시작되고 활성화된 공간에 내 작품이 소외될 우려가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작품을 기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강화군은 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할 명분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자칫 특정 작가만을 위한 미술관을 조성하는 것으로 비칠 수가 있었다"며 "군이 전 작가의 작품을 기증받아 강화군의회 예산 심의 등 사업 추진 명분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군과 작가 간 협상은 결렬됐고, 서예관 건립은 사실상 무산됐다. 인천을 활동 근거지로 둔 유명 서예가와 작품이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됐다.
전 작가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술관을 빨리 비우라는 독촉을 받기도 했다"며 "협상이 깨졌다고 예술가를 무심하게 내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화군 관계자는 "30차례 가까이 작가를 만났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며 "기존 서예관 계획을 제외하고 해당 폐교를 대상으로 접경지역 문화재생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강화도 천자문 명필 '한장도 안남기고 모교 떠나'
입력 2020-12-10 21:57
수정 2020-12-1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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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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