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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포메 0325, 포메라니안 주인은 럭셔리하게 생겨서 셔리라 지었다고 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되는 진흙탕 흙이 신발에 찐득찐득 들러붙었다
검은색과 은빛 여우털들이 오토바이에 실린 채 무더기져 쌓여있었다


포메 0325. 보호소에 새로 들어온 포메라니안 이름이다. 0325를 주인은 다섯 살 된 셔리라고 했다. 럭셔리하게 생겨서 셔리라 줄여지었다고 말했다. 은유는 셔리보다 주인이 더 럭셔리하다고 생각했다.

셔리는 은유를 향해 자지러들 듯 짖어댔다. 셔리, 그만해, 쉿 조용, 하고 말하는 주인의 목소리는 셔리보다 앙칼졌다. 셔리는 두려움의 눈빛으로 은유를 노려봤다. 우리 셔리는 방안에서만 자랐어요. 밖에 나가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안 데리고 나가서였는지 나중에는 아예 밖에 나갈 생각을 않더라구요. 현관에서 짖기만 할 뿐 내가 외출해도 따라나선 적이 없었어요. 오늘이 처음 외출이라 겁을 먹었나, 셔리가. 주인의 얘기는 쓸데없이 길었다.

은유는 셔리를 받아들고 몸무게를 가늠했다. 0325는 병도 없고 예방주사도 잘 맞췄고 중성화 수술도 했다. 몸무게 3.5㎏ 흰색 털, 작고 예뻤다. 은유의 품안에 안겨 부들부들 떨면서도 짖었다. 짖기를 그치고 애원하는 표정으로 은유를 바라봤다. 저런 눈빛, 많이 봐왔다. 하루에 두세 번쯤 그리고 어쩌면 더 자주. 털빛도 건강하고 고왔다. 한 달쯤 전 미용했는지 가장 예쁘게 자라있었다. 발끝 털이 더 수북하게 자라있어 발톱을 감췄고 귀엽고 생기 있어 보였다.

0325의 주인은 사흘 전 미리 전화를 줬고 약속한 시각에서 30분쯤 늦게 보호소에 도착했다. 조금 늦었죠? 미안해요. 주인은 결코 미안해하지 않는 밝고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은유는 셔리의 머리를 매만지며 주인에게 싫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호소 찾느라 조금 헤맸어요. 내비게이션이 왜 빙빙 돌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 근처를 두 번이나 지나쳤는데 겨우 찾았네요. 꼼꼼한 사람이었다면 이곳을 지나치진 않았으리라. 개 짖는 소리가 들렸을 테고 멀리에서도 키 낮은 울타리가 보였을 테니. 넓지는 않지만 개들이 운동할 수 있는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도 있다. 셔리가 오래 머물지 않을 테니 보호소가 어떤 환경인지 주인은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은유는 비어 있던 케이지에 셔리를 넣었다. 어머, 벌써 그곳에 넣으면 어떡해요. 빨리 꺼내주세요. 주인은 화들짝 놀라며 부산을 떨었다. 꺼내서 주인에게 건네려는 순간 셔리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은유 팔에 길게 긁힌 자국이 생겼고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주인이 셔리를 잡으려고 뒤따라갔다. 은유는 화장지를 떼어 핏방울을 닦아냈다. 붉은 선이 그어졌다. 셔리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거나 의자 다리 사이를 오가며 주인의 손길을 요리조리 피했다. 주인이 가방에서 간식을 꺼냈다. 주인에게 다가가서 닭고기 져키를 무는가 싶더니 주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셔리는 바닥에 떨어진 져키를 물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뜯기 시작했다.

결혼한 딸이 다음 주면 아이를 낳는다고 했다. 딸은 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니 자신이 손자를 키울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셔리를 키울 수 없다고 주인은 말했다. 5년 키운 셔리를 남에게 줄 수도 없고,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거나 나쁜 주인을 만나서 구박이라도 당한다 생각하면 잠도 못 자겠어요. 나와 헤어져서 슬퍼할 셔리를 생각하면 차라리 안락사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주인은 셔리가 듣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모양이었다. 이미 결정을 하고 사흘 전 전화로 얘기를 했고 여기 데려오지 않았는가. 다른 좋은 주인을 만나면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죠. 은유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글쎄 제 친구 딸이 비글을 키웠잖아요.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나 봐요.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 줬는데 그 사람이 못 키우고 또 다른 이에게 줬대요. 네 번을 옮겨 다니고 나서야 친구 딸이 다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나요. 우리 셔리에게도 그런 일이 생겨 봐요. 어떻게 그런 일을 겪게 하겠어요. 주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셔리를 바라봤다. 셔리는 져키의 마지막 부분을 아작아작 씹어 삼키고는 손을 뻗어 입 주위를 닦았다. 앙칼지게 할퀴고 깨무는 걸 보니 셔리는 약하지 않았다. 다른 주인을 만나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겨울 여행이 세 사람에게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호텔은 지나치게 크고 화려했지만 얼음 속처럼 추웠다. 은유는 추위에 떨며 밤새 잠을 거의 못 잤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추위에 아랑곳 않고 고조는 편안하게 잘 자는 눈치였다. 호텔 입구에는 공장에서 나온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재오가 가장 늦게 로비로 내려왔다. 차를 타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는데 밖의 기온과 로비의 기온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히터 열기에 따뜻해진 차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추위에 굽어진 허리를 편안하게 펼 수 있었다.

호텔에서 시장까지 오는 동안 잠깐 잠을 잘 수 있었다. 쨍하게 추운 날씨가 상쾌하다고 고조가 말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걷던 은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나치게 푸른 하늘에 옅은 구름 몇 조각이 지평선 언저리에 닿아있었다. 시장 주위로 시야가 안 닿는 곳까지 넓게 빈 밭이 펼쳐져 있었다. 여름이면 희끗희끗한 목화송이가 저 빈 들판에 끝없이 들어찬다고 재오가 말했다. 봄에 건조한 바람이 불면 밭에서 이는 흙먼지가 얼굴에 부딪쳐 상처가 생긴다고도 했다. 은유는 픽 웃고 말았지만 재오의 시답잖은 농담이 싫지는 않았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되는 진흙탕 흙이 신발에 찐득찐득 들러붙었다. 주차를 하고 시장 입구까지는 채 오십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은유는 짜증이 났다. 움푹움푹 빠지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고조의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났다. 이렇게 질척이는 흙길을 오랜만에 걸어본다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시장 입구에 다가설수록 더 질척였고 신발이 더 깊이 빠졌다. 흙덩이가 덕지덕지 붙은 자신의 빨간 어그부츠를 내려다보며 그나마 다행이지? 발이 젖지는 않잖아, 하고 고조가 웃었다.

톈진에 있는 따영까지 가게 된 건 고조의 고집 때문이었다. 원단구매는 재오 몫이었다. 모피원단의 생산 공정은 재오가 따영에 다녀올 때마다 되풀이해서 얘기해 줬다. 고조가 굳이 그것을 봐야겠다고 우길 필요까진 없었다. 고조는 가고 싶지 않으면 굳이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은유에게 말했다. 차마 할 수 없었던 얘기를 낯선 곳에 가면 꺼내기가 쉬울 수도 있다고 은유는 판단했다. 억지 부리며 따영에 따라온 이유였다.

디자인은 거의 카피였다. 카피를 얼마큼 잘하느냐, 그것이 유능한 디자이너의 능력이었다. 비싼 원단이 적게 들어가고 효율적으로 어필되는, 유행을 잘 포착해내는 능력. 여성복 패션 디자이너로 불리는 고조가 해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절감각에 맞게 수많은 디자인이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고조는 카피를 일종의 벤치마킹이라고 우겼다.

그러니까 고조는 굳이 모피 생산과정까지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카피가 전문인 디자이너에게 원단생산 공정 따위는 알 필요가 없었다. 재오는 고조에게 너그러웠다. 따영에 다녀올 때마다 다음엔 꼭 같이 가자고 말했다. 은유는 그저 하는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고조는 재오에게 약속 꼭 지켜야 돼, 라고 다짐을 받았다. 고조가 근무하던 의류회사에 재오가 입사 한 이후부터 셋은 자주 어울렸고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서로 편했다.

시장 입구에는 석탄 덩어리를 실은 리어카가 길게 줄지어 놓여있었다. 가공되지 않아 크기가 제각각인 석탄 덩어리는 검고 굵은 돌덩이처럼 보였다. 덩어리를 사서 적당히 잘게 부수어 난방을 하거나 필요한 곳에 쓴다고 재오가 말했다. 은유에게는 모든 게 낯설고 불편했다. 고조는 저 덩어리는 우리가 쓰는 장작 같은 거네요? 하고 물었다. 그렇지. 재오와 고조는 나란히 걸었고 은유는 두어 발짝 뒤따랐다. 고조의 와인빛 머플러가 바람에 날려 재오의 등에 닿았다 떨어지곤 했다.

석탄 리어카를 지나자 검은색과 은빛 여우털들이 오토바이에 실린 채 무더기져 쌓여있었다.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1미터도 더 돼 보였다. 윤기 흐르는 여우 털은 바람에 스칠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저런 여우 털을 사다 공장에서 손질해 원피를 만든다고 재오가 설명했다. 붉게 상기되어 있던 고조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고조가 곁에 와서 은유의 팔을 붙들었을 즈음 이상한 냄새가 떠돌기 시작했다. 역한 냄새가 코끝을 떠나지 않았다.

셋은 어느새 더 좁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거리에 들어와 있었다. 재오가 한 곳을 향해 곧장 걸었다. 은유가 재오의 뒤를 따랐고 고조는 은유의 팔을 붙들고 걸었다. 떠도는 공기마저 축축하게 느껴졌다.

여우들이 맑은 눈을 빛내며 철망 우리 안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우리에서 흘러나온 배설물이 흙과 뒤섞여 있었다. 냄새가 진동했다. 칠흑처럼 까만 털을 가진 여우가 우리 밖 세상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시장 안 좁은 통로로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오갔다. 시끄러운 목소리와 역한 냄새가 잘 섞여든 시장 분위기는 활기차고 복잡했다. 재오의 목소리도 약간 들떴다. 처음이지? 매번 볼 때마다 참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 끔찍함이 배어 나오지 않은 가벼운 목소리였다. 약간 상기된 기대감까지 느껴졌다.

찐득하게 들러붙은 머리가 귀밑까지 자라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남자가 우리 안에서 여우를 잡아 끌어냈다. 여우 뒷다리를 잡더니 머리를 땅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엉겁결에 끌려 나온 여우는 한마디 괴성을 내지르다 멈췄다. 기절한 여우를 한쪽에 던져 놓고 우리에서 다른 여우를 꺼내 바닥에 내리쳤다. 다섯 마리의 여우가 꽁꽁 언 흙바닥에 널브러져 쌓였다. 희미하게 정신을 차린 듯 꿈틀대는 머리를 나무 몽둥이로 차례로 내리쳤다. 죽은 듯 누워있는 여우에게 남자가 손도끼를 꺼내 다가갔다. 작은 베개만 한 나무토막에 여우 발목을 올리고 도끼로 내리쳤다. 뭉툭한 칼을 꺼내 여우 목에 대고 칼집을 넣은 뒤 뒷다리 부분에도 몇 차례 더 칼집을 넣었다. 기계적이고 재빠른 손놀림이었다. 잘려나간 발목 부분에서부터 천천히 껍질을 뒤집어 벗겼다. 찌이익, 살 찢어지는 소리가 겨울 공기에 섞여들었다. 뒤집어 벗은 옷인 듯 벗긴 껍질을 언 땅에 던졌다. 옷을 벗어 붉게 실핏줄 드러난 하얀 여우 몸뚱이도 다른 쪽에 쌓았다. 여우가 힘겹게 눈을 떴다. 경련하듯 파닥거리는 여우 몸에서 흰 김이 피어올랐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껍질을 벗겨야 가죽 상태가 좋아. 재오가 덤덤하게 말했다. 꽁꽁 언 흙바닥에 붉은 핏물이 고여 갔다.

고조의 손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은유의 손을 꼭 쥐고 있었는데 손끝부터 얼음처럼 차가워가는 느낌이 또렷했다. 감기든 사람처럼 몸까지 오돌오돌 떨었다. 상대적으로 은유의 손이 뜨거웠던 걸까. 은유는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몸을 꼿꼿이 했다. 달아나려는 고조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뭉툭한 칼을 잡고 여우 껍질을 벗기는 남자의 손놀림은 순발력과 기교가 있었다. 여우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까. 칼이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도 알아챌 수 없는, 도의 경지의 손놀림을 발휘해 여우도 남자도 무엇도 느끼지 않았으면 싶었다. 찌이익 껍질 벗겨지는 소리. 겨울 공기를 가르고 북적대는 시장의 소음 속으로 사라져 갔다. 고조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건지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은유가 세게 잡아 끌어낸 다음에야 겨우 걸음을 떼었다.

그날 밤 고조가 마신 술의 양이 얼마였는지 은유는 오래도록 의문으로 남았다. 재오가 처음부터 중국의 백주를 권했다. 고조에게 잘 맞을 거라며 노정공주를 시켰다. 소주도 잘 못 마시던 고조는 노정공주를 잘 받아 들이켰다. 술은 단맛이 느껴졌고 부드러웠지만 목을 넘길 때 느껴지던 톡 쏘는 끝 맛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노정공주를 두 병째 비우고 이후로는 좀 더 저렴한 술로 몇 병 더 비웠을 것이다. 술자리는 새벽녘까지 이어졌고 부축해 들어왔던 고조는 다음 날 깨어나지 않았다. 따영 병원에서 며칠을 보내고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고조는 은유와 함께 돌아왔다.

병원냄새는 갈 때마다 불편했다. 몸속까지 끈질기게 파고드는 냄새는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은유는 생각했다. 고조의 병실은 3층이다. 천천히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3층까지 오르는 동안에 뭔가를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병실 문 앞에 서 있곤 했다.

침대에 누운 채 두 눈을 뜨고 있는 고조를 마주보며 앉았다. 저런 눈빛,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치는 눈빛이다. 뭘 원하는지 알 것 같다. 다 들어 줄 순 없다. 밖으로 나가고 싶겠지.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할 때의 눈빛도 저렇다. 손을 우리 밖으로 내밀며 보호사를 만지고 싶어 빈 손짓을 할 때의 강아지들 눈빛도 저와 같았다.

은유는 보호소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된 애플푸들의 밖으로 나온 손을 무심코 잡았었다. 손을 놓고 몇 발짝 옮기지도 않았다. 함께 갇혀 있던 개들이 애플푸들에게 모두 달려들었다. 집단 린치를 당한 애플푸들은 바닥에 뻗어버렸다. 끙 끙, 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깨물리거나 할퀴어서 어딘가 다쳤을 것이다. 길들이는 거였다. 이제 들어온 네가 감히 주인의 손을 만져, 라는 경고. 모른 척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관심을 보인다면 애플푸들은 다른 케이지로 옮겨야 한다. 들어온 지 며칠 안 된 아이든 오래 갇혀 있는 아이든 은유가 지나치면 케이지 밖으로 손을 내밀어 잡아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고조 지금 넌 뭘 원하는 거니? 은유는 눈빛으로 묻는다. 배고파? 아니면 나가고 싶어? 고조는 어쩌면 지금도 재오와 잘 사귀고 있어? 라고 묻는지도 모른다. 아니, 헤어졌어, 라고 말할 수는 없어. 네가 편안하길 바라지 않으니까.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그런 눈빛을 나에게 보낼 거지? 넌 말이 많았어. 원하는 게 있을 땐 주저 없었어. 그런 네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무시하면 곧장 불이익이 따라왔지.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