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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군인들 민주화 시위 무력 진압
총 맞아 몇명 죽었는지 알수 없다고
오랜 희생 여전히 군사독재에 신음
광주에 빚지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기꺼이 응원하리라 믿는다

정한용 시인
정한용 시인
젊은 세대는 '미얀마'라는 이름이 익숙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버마'가 친근하다. 아시는 분은 아실 터, 나라 이름이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뀐 것은 1989년이다. 영국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이래 버마는 오랜 세월 군부독재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자주 갈등을 빚어왔다. 1988년 소위 '8888항쟁'에서 수많은 시민이 다치고 죽었다. 혼란을 잠재우고 국가 통합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군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 중 하나가 바로 국명의 변경이었다. 국민적 합의 없이 졸지에 생겨난 이름이니, 아웅산 수치를 포함한 민주 진영에선 여전히 옛 이름 '버마'로 불러달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아직도 '버마'만을 공식 명칭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도 그들의 눈물겨운 민주화 열망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버마'로 부르고 싶다. 이 버마에 얽힌 두 가지 추억이 있다. 하나는 2016년 겨울, 버마로 여행 갔을 때 겪었던 에피소드이다. 양곤에 도착한 다음 날, 버마에 왔으니 당연히 가보아야 할 곳은 쉐다곤 파고다와 전통시장 등.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버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우리가 잘 아는 수치 여사의 아버지이다. 무조건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아웅산 장군 기념관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곳을 아는 택시운전사는 아무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 택시가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나를 어떤 큰 집 앞에 내려주었다. "여기가 아웅산이 사는 집입니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떠나버렸다. 그 집은 담장을 높이 올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고, 대문에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더구나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알고 보니 거긴 아웅산 기념관이 아니라, 수치 여사가 가택 연금된 집이었던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버마 민주화의 상징적 현장에 왔지만, 그렇다고 수치 여사를 만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념관 같은 건 없었고, 영묘는 쉐다곤 파고다 근처에 있었다.

두 번째 추억은 2003년 미국 아이오와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아이오와 대학교 내의 한 호텔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26명의 작가와 석 달을 함께 지냈다. 워크숍도 갖고 작품도 낭독하고 문화행사에도 참석했다. 작가에겐 숙소가 하나씩 배정되었는데, 우연히도 내 방 맞은편에는 버마 학자 마웅산 위 선생이 묵었다. 그분은 연세도 많은 데다 버마 억양이 심한 영어를 써서, 대부분 작가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 나는 늘 깍듯이 인사를 건네고 시집도 기념으로 전달하니 좀 친근하게 느꼈나 보다.

어느 날 그분이 내 방 문을 노크했다. 가벼운 안부만 나누고 싶었는데, 아예 내 방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진지하게 말씀하는데, 나는 곧 그것이 지난 '8888항쟁'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분은 시인이자 민속학자로 버마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으며, 이 프로그램에 온 것도 사실은 버마를 탈출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1980년 우리나라 광주를 떠올렸다. 버마의 젊은이들이 죽창을 들고 군인들과 맞서는 대목에서는 금남로에서 총탄에 쓰러지는 광주 시민들이 오버랩 되었다. 그분의 눈시울이 붉어갈 때 나도 따라 하염없이 울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그분을 뜨겁게 포옹해주었다. 밖에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뉴스에선 버마 군인들이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총에 맞은 시신을 끌고 가는 사진도 보이고, 매장한 시신을 도굴해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슬픈 역사를 통과해 지금 다행히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버마는 우리처럼 오랜 기간 엄청난 희생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군사독재의 발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 슬픔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광주에 빚을 지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기꺼이 버마를 응원하리라 믿는다. 부디 버마에 민주와 평화, 그리고 부처의 자비가 깃들기를!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