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1년…퇴근 못한 내 아버지

"우리 가족의 삶은 2020년 4월29일에 갇혔다"

발주처 처벌 포함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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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11시 한익스프레스 서울 본사가 입주한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 회관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현장 산재참사 1주기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1.4.26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노인 사회복지 일을 하는 김지현(27·서울 강북구 거주)씨는 지난해 4월29일 아버지를 잃었다. 퇴근 후 아버지(사망 당시 60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천에서 큰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가 걱정돼 전화연결을 시도했지만, 평소와 달리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그 날 아버지는 퇴근을 하지 못했다.

김지현씨는 지금도 "손수 세 자매 교복을 다림질 해주시던 가정적이고 사랑 많았던 내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26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회관 앞. 지난해 4월29일 일어난 화재 참사로,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서울 본사가 있는 곳이다. 김씨가 마이크를 잡고 섰다.



김씨는 "아버지가 황망히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매일 버티고 있을 뿐 우리 가족의 삶은 2020년 4월29일에 갇혔다"고 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참사 당시 사촌이 운영하는 엘리베이터 시공 업체에서 일했다. 시신은 3층에서 발견됐다. 숨지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사무직으로 회사를 다니다 정년을 앞두고 시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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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11시 한익스프레스 서울 본사가 입주한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 회관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현장 산재참사 1주기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1.4.26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김씨는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이 나왔지만, 그 사과가 과연 고인들과 유가족에게 하는 사과인지 판사에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진심 어린 사죄와 함께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김씨 외에도 5명의 유족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현장 산재 참사 1주기 추모행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에 나왔다.

오일남(66·중국 국적)씨의 5형제 중 막내 동생 오모(45)씨는 그 날 이천 현장에서 방수 일을 하다 변을 당했다. 오씨는 "막내가 3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큰 형으로서 부모 역할을 하면서 함께 자랐는데, 동생이 제일 먼저 죽어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날 추모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과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가 유족들과 함께 했다. 과로 끝에 숨진 이한빛 tvN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도 참석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참가자들은 숨진 38명의 노동자를 추모하며 묵념했고, 한익스프레스가 입주한 대한건축사회관 앞에 차린 시민분향소에 미리 준비한 하얀 국화를 바쳤다. 주최 측은 회견 장소 주변에서 건설현장 산재사망 사진을 전시하는 사진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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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11시 한익스프레스 서울 본사가 입주한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 회관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현장 산재참사 1주기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시민분향소에 유족이 헌화하는 모습. 2021.4.26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한해 2천300여명의 노동자가 죽음의 재앙인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다"며 "어렵사리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지만, 발주처가 처벌에서 빠진 누더기법에 불과하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죽지 않는 세상이 올 때까지 행동하겠다"고 강조했다.

40명이 숨진 2008년 이천 코리아 냉동창고 화재 참사 당시 사업주에 대한 벌금 2천만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건설현장의 안전 관리 책임을 경시하게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은 발주처 처벌을 포함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에 힘을 실었다.

장옥기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은 "산재 사망자 2천400명 중 600명이 건설현장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며 "영국이 기업살인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처럼 우리도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해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참사는 지난해 4월29일 오후 1시32분께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발생했다. 이 불로 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현재 사건 관련자들은 수원지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발주처 한익스프레스의 TF 팀장 A씨에 대해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 시공사 건우의 현장소장 B씨에 대해 징역 3년6월 실형을 선고했다. 시공사 법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벌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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