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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의 첫 황금주말이 사라졌다. 지난 주말 내내 전국을 뒤덮은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와 황사는 환경오염이 부른 기후변화의 결과다. 이상 고온에 폭설, 유례없이 긴 장마, 그리고 코로나19까지 모두 문명이 만든 재앙이다. 희뿌연 잿빛 하늘 아래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을 보면서 문득 지구의 종말을 다룬 SF영화들이 떠오른다. 문명의 모델을 바꾸고 환경을 지켜야지 하는 것은 오직 관념과 구호일 뿐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는 반환경적 삶과 생활 패턴을 바꾸지 못하고 산다.

이럴 때 문득 생각 난 인문학 담론이 포스트휴머니즘이다. 이 포스트를 탈(脫)·후기(後期)·초월(超越) 중 무엇으로 번역해야 할지 모를 만큼 포스트휴머니즘은 아직 명쾌한 정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AI나 생명공학 같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생을 꿈꾸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근대사회를 지배해온 휴머니즘론 같은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나아가 인간중심적인 사고와 환상에서 벗어나자는 메시지만큼은 분명하다.

지금 인류세(人類世)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환경파괴·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이상 기후에 팬데믹까지 인류 사회가 직면한 산적한 문제들을 포스트휴머니즘론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이 우심(尤甚)한 문제들을 외면한 채 질병·죽음 같은 생물학적 한계를 과학기술을 통해 극복하자는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인위적 진화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있는 인권·평등·민주주의는 수많은 사상가들과 양심적 행동주의자들의 고귀한 희생과 땀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존엄한가. 존엄을 받을 가치 있게 살고 있는가. 혹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이념으로 타인과 환경과 다른 생명체들에게 휘두르고 있는 폭력은 없는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소식과 대통령 4주년 연설 등의 뉴스가 들려오는 황망하고 바쁜 출근길 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겨봤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