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우리동네 술도가를 찾아서

[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우리동네 술도가를 찾아서·(4)] 막걸리 세계화 앞장선 양주 '양주도가'

과학으로 발견한 신맛의 밸런스… 막걸리 업계에 다가온 '별'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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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별산대놀이 고장서 '별산' 브랜드 제품 생산
평생연구 정수 녹인 '오디 스파클링' 자부심
발효과정 적기에 초산균 주입으로 신맛 균형
창의성 더한 주조… '2020 대한민국 주류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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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막걸리'가 요즘처럼 대접받은 적이 있었던가.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농부들이 툇마루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출출함과 지친 몸을 달래려 투박한 사발로 나눠 마시던 술, 그래서 때론 '농주'로 불리던 막걸리.

이 흔하디흔한 술이 이제야 그 값어치를 인정받으며 새 전기를 맞고 있다. 전통은 전통대로 살리며 달라진 취향에 맞춰 조금씩 변화가 가미되자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뻗어 가고 있다.



맥주와 와인, 위스키 등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술들이 숱한 변화를 거치며 세계 각지로 전파돼 오늘날의 입지를 다졌듯 우리 술 막걸리가 그 길을 가려 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술의 공통점은 종류도 많고 맛도 가지각색이란 것이다. 맥주만 하더라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그 맛도 지역마다, 제조사마다 다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끈 수제 맥주가 이런 다양성의 뿌리라 할 수 있다.

막걸리는 언뜻 종류가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다. 막걸리에서 파생된 술도 많다. 지방, 집안, 술도가 등 제조하는 곳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다. 오늘날 막걸리가 다시금 주목받는 것은 이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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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별산 막걸리 발효과정.

# 뽕나무의 추억을 담다

양주시 광적면의 유서 깊은 마을 '비암리'. 논과 밭, 하천으로 둘러싸여 운치 있는 이곳에 '양주도가'가 자리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앞마당엔 비암리의 상징인 '견준 바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 바위는 한가운데 구멍이 나 있는데 나뭇가지를 꺾어 구멍에 견줘 잘 맞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출산을 기원하던 바위인 셈이다.

양주도가는 '별산'이라는 브랜드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별산은 여러 의미를 담은 중의적인 표현인데 양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인 '별산대놀이'와 '특별한 신맛', '별이 내려앉은 산'을 뜻한다.

이 막걸리를 한 번이라도 마셔본 사람이라면 별산이 특별한 신맛이라는 데 더 공감할 것이다. 일반 막걸리와는 묘한 차이가 난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마치 샴페인의 청량감이 감도는 신맛을 느낄 수 있다. 정통 막걸리의 텁텁함을 알싸한 신맛이 감싸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양주도가가 최근 내놓은 신제품 '별산 오디 스파클링 막걸리'는 이 청량감을 배가한 막걸리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맛을 더해주는 게 오디다. 이 오디는 양주에서 재배되는 뽕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사용한다.

이 회사 김기갑(51) 대표는 "어릴 적 뽕나무에 매달린 오디를 입술이 까매지도록 따먹으며 놀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며 "평생 매달려온 막걸리 연구의 정수가 녹아있다"고 자부했다.

# 막걸리의 맛을 결정짓는 '신맛'

김 대표는 양주도가를 창업하기 전 26년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막걸리 제조사에서 제품개발을 이끌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그가 제품개발에 나서며 가장 먼저 한 일은 막걸리 제조에 과학을 섞는 일이었다.

같은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라도 때때로 맛이 다른 경우는 과거 매우 흔한 일이었다. 이런 문제는 감에 의존해 막걸리를 빚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회사원 시절 막걸리의 생명인 발효과정이 순전히 개인의 감에 의존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때 처음 '술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술이 아프다'는 건 곰팡이, 효모, 유산균의 균형이 맞지 않아 막걸리 맛의 원천인 신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때부터 미생물 연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막걸리는 식초의 신맛을 닮았지만, 식초가 돼선 안 된다. 이 절묘한 균형을 어떻게 잡아주느냐에 따라 막걸리의 맛이 좌우된다. 양주도가에서 빚는 별산은 이양주 기법을 쓰는데 발효가 시작되고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에 초산균이 주입된다. 이 과정이 바로 막걸리에 특별한 맛을 내는 비법이다.

김 대표는 "막걸리 제조의 발효과정에 유산균 발효기술을 적용해 산뜻하고 청량감 있는 신맛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술은 과학이 만들어 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주도가는 역사가 짧은 매우 젊은 술도가이지만, 이곳 막걸리는 우리 전통 막걸리 주조법에 과학을 입혀 창의적인 맛을 빚어내는 술도가로 우리 술 막걸리의 대중화와 세계화의 첨병으로 기대를 모은다.

모혜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경기북부지부장은 "최근 들어 주류도 수출상품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막걸리는 우리 전통주로서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며 "지난해 '2020 대한민국 주류대상'을 받은 이 기업의 창의적 막걸리 제조는 막걸리의 세계화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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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갑 양주도가 대표가 자사의 대표 막걸리인 별산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1.6.14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 '식품공학도 출신 열정' 김기갑 양주도가 대표

미생물 공부하며 '아픈 술' 치료법 찾아
샴페인과 조합 젊은층까지 대중화 목표


"사실 신맛을 내는 식초 막걸리는 어느 양조 문헌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혼자 연구하며 수없는 실패를 교사로 삼아 만들어낸 막걸리입니다."

양주도가 김기갑 대표는 새로운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김 대표는 "과거 전통주를 제조하는 일부 기업에선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비과학적인 방법에 의존해 술을 만들고 있었다"며 "'술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원에서 미생물을 공부하고 잘못 빚어 '아픈 술'을 낫게 하는 치료법을 찾았다. 이는 양조에 어지간한 애정을 갖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김 대표는 "연구를 위해 막걸리를 빚을 때면 설렘을 느끼곤 했다"며 "이런 감정이 막걸리에 빠져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가 결국 추구하는 것은 차별화된 막걸리다. 전통 막걸리의 맛을 품고 있되 시대에 맞게 과학으로 재창조한 맛이다.

김 대표는 "별산을 개발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적절한 신맛을 찾아내는 것이었다"며 "이 신맛이 차별화된 막걸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양주도가는 샴페인의 청량감을 내는 막걸리를 개발 중이다. 샴페인과 막걸리의 조합을 통해 젊은 층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막걸리의 대중화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받은 '2020 대한민국 주류대상'은 시중에 없는, 독특한 막걸리 개발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차별성으로 막걸리의 세계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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