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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한유는 자신의 인생을 점검하며 궁귀(窮鬼)를 떠나보낸다는 '송궁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궁귀의 궁은 다할 궁자로 무엇인가를 끝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더 이상 갈 길이 다해 다른 길이 없어 막혀있다는 궁색의 의미로도 쓰인다. 자신의 성향이나 재질에 대해 한유는 다섯 가지의 소주제를 가지고 평가하였다. 평가를 하면서 이제 그런 성향이나 재질을 떠나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운명이라 깨닫고는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런 심리적인 전개과정을 다섯 귀신을 끌어들여 글을 쓰고 있다. 다섯 귀신은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이다.

지혜로 따지면 남을 해치는데 쓰지 못하고, 학식으로 따지면 실용적인 것이 아닌 심원하고 미묘한 것을 알아내려 하고, 문장으로 따지면 기능적인 문장이 아니라 남들이 보면 기귀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운명으로 따지면 마음씨는 고와서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느리고 책임질 일에 빠르며, 사교로 따지면 속마음을 솔직히 다 보여주고도 배신을 당하는 궁색함을 말한다. 자신이 갖춘 지혜와 학식과 문장과 운명과 사교의 양태가 세속과는 달라서 고생을 하니 이제 그만 이별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이 다섯 귀신이 자신에게 다섯 가지 환난을 만들어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며 비난을 받게 하고 미혹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떠나보내려 밥과 술과 수레와 배를 마련해놓고 제발 떠나달라고 빌지만 결국 준비했던 수레와 배를 불사르며 포기한다는 해학적인 형식의 글이다. 타고난 기질과 개성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