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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니티문화예술공간 'ㅃㅃ보관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현주·조광희 작가. 2021.7.15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미군부대 떠난 자리 노인 저소득층, 이주노동자만 남아 쇠락길

배나무가 많은 마을, '뺑'이라는 풀이 무성했던 자리, 한 번 들어오며 발을 뺄 수 없는 뻘과 같은 곳….

마을 이름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 '빼뻘'은 미군부대(캠프 스탠리)가 들어서면서 1950~60년대 형성된 정착촌이다. 고산동이라는 번듯한 행정명이 있지만 왜인지 의정부 사람들은 '빼뻘'이라는 명칭을 더 잘 쓴다.

빼뻘 주민들은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미군에게 의존하며 살았다. 군복을 수선하고, 군용품을 팔고, 미군이 이용하는 식당과 주점을 운영했다. 그러다 평택 이전과 함께 주둔하던 미군이 점점 줄자 마을도 자연스럽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돈 번 사람은 대부분 떠나고 이제 마을에는 노인과 저소득층, 이주노동자가 남았다.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시기 종중이 소유한 땅에 불법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보니 2000년대 들어선 땅의 이용을 두고 법정분쟁이 빚어지기도 했다. 15년만에 종중이 일부 토지를 매각하기로 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경제·사회적 격차와 주민 간 반목은 아직도 남아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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ㅃㅃ보관소 벽 한켠에 걸린 지폐들(사진 왼쪽).ㅃㅃ보관소 벽 한켠에 미군 주둔 당시 찍힌 사진과 자료(사진 오른쪽)들이 걸려있다.빼뻘마을에서 마지막까지 운영된 미군전용바 '힐사이드'를 개조해 만든 ㅃㅃ보관소에는 영업 당시 미군들이 남기고 간 낙서와 지폐가 상당수 남아있다. 2021.7.15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예술가 부부 찾아와 기존 건물 활용 '문화·커뮤니티 공간' 조성

그런 빼뻘에 2019년 김현주, 조광희 작가가 찾아왔다. 한국전쟁과 기지촌 삶에 대해 연구해 온 두 작가는 우연히 이 마을의 공동체 붕괴 현실을 접했고 그 뒤로 아예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기지촌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미시사에 주목하면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김현주 작가는 "처음 빼뻘에 왔을 때 지나가던 고양이조차 이방인을 경계할 정도로 삭막한 마을이었다"며 "과거 벌어진 갈등과 주민들 각자의 상황이 얽혀 감정의 골이 깊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떤 이해관계와도 상관없이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예술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마을에 필요하다고 느꼈다"면서 "당장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긴 어렵지만,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이라는 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예술 활동을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클럽과 구제 옷가게 터를 전전했던 두 작가는 지난 5월 미군전용 바 '힐사이드'를 빌려 개조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데다 수년간 방치돼 상태가 심각했던 건물은 두 작가와 주민들의 손을 거치면서 말끔한 전시 및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의정부문화재단은 거점공간지원사업을 통해 활동을 지원했다. 'ㅃㅃ보관소'라고 이름 붙인 이 공간에선 앞으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과 공동체 활동이 이뤄질 예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ㅃㅃ보관소'는 지난 9일 개소했다. 개소식은 주민들과 함께하는 거리극과 빼뻘을 주제로 한 작가들의 작품 전시로 꾸며졌다. 거대한 사자탈이 등장하는 거리극은 그야말로 마을 잔치였다. 주민들은 거리극에 앞서 가면과 소품을 만들고 거리극이 시작되자 사자탈을 뒤따르며 장단을 맞췄다. 7명의 작가가 만든 다양한 설치 작품과 미디어아트에도 주민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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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열린 ㅃㅃ보관소 개소식(가운데)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연(왼쪽), 거리극(오른쪽). 2021.7.15 /김현주 작가 제공

전시·거리극·생일잔치... 공동체 회복·유산 기록 활동 등 '활발'

작가들은 빼뻘에 홀몸노인이 많다는 점에서 착안, 매월 주민들의 생일잔치를 여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주민의 생일을 축하함으로써 그가 걸어온 삶에 대한 격려와 감사를 전하고 이를 마을 공동체의 연결고리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김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모두 고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서 "빼뻘 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소통하고,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인생이 충분히 의미 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빼뻘 주민들의 이야기가 세대를 넘어 울림이 있는 예술로 향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두 작가는 '당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순간)은 무엇입니까'라는 주민 사진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민 6명에게 일회용 필름 카메라와 '열흘 동안 아름다운 것, 기분 좋은 순간을 촬영하세요'라는 미션이 주어진 상태다. 작가들은 조만간 카메라가 취합되면 ㅃㅃ보관소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조 작가는 "주변 다른 지역은 대규모 도시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빼뻘은 마치 도시 안 작은 섬처럼 수십 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론 마음이 바쁘다"며 "그 시절 그때 그 모습이 사라지기 전 남아있는 빼뻘의 유산을 잘 기록해 보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