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년전 모습 고이 간직한 장소
'스무살이협동조합'과 손 잡아
시민 향유할 거점 공간 만들어

의정부시 가능동 폐쇄된 미군기지 캠프 레드클라우드(CRC) 앞에 위치한 '향군클럽'은 미군만 출입 가능했던 클럽이었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향군클럽은 미군의 평택 이전 시점을 전후로 마을과 함께 쇠퇴했다.
미군에게 '지미추'라고 불렸던 지배인 주인균(81)씨는 향군클럽을 운영하면서 이곳을 다녀간 장교들의 사진과 기념품을 모아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했다.
그렇게 향군클럽에는 웬만한 박물관에도 없는 근대사의 기록들이 쌓였다. 미군은 물론 내국인의 발길도 끊어진 지 오래지만 주씨는 향군클럽의 문을 닫지 않았다. 영업을 9년 전 중단하고도 시간이 날 때마다 향군클럽에 나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미군을 기다려왔다.
'스무살이협동조합'은 의정부 출신 청소년과 청년이 만든 조직이다. '2030 세대의 마을살이'를 의미하는 이름처럼 청년 조합원들은 의정부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각자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지역의 문제와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다.
'많은 청년이 의정부에서 행복을 찾고, 지역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는 스무살이협동조합은 청년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창작공간을 운영하는 동시에 지역의 자원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주씨와 스무살이협동조합은 의정부문화재단이 추진한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연결됐다. 향군클럽이 보유한 역사적 유산에 청년들은 현재와 미래의 숨결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았다. 스무살이협동조합은 재단의 지원을 받아 향군클럽을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거점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달 초 내부공간 정비를 마친 스무살이협동조합은 최근 향군클럽을 '가오픈'해 시민들을 맞고 있다. 시민들을 초대해 문화예술을 매개로 소통하기도 한다.
그동안 과거의 향수를 느끼는 공간으로 쓰였던 향군클럽은 이제 시민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곳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주씨는 다시 지미추로 불리며 향군클럽을 찾아온 손님에게 그 때 그 시절을 설명해주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김혜영(29) 스무살이협동조합 이사장은 "미군 주둔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민들도 있지만 의정부 출신으로서 그 또한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수십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향군클럽과 이 일대 골목은 의정부 지역 문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의 역사·문화적 자산에 대해 시민들이 탐구하고 공유하면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소속감과 이해도, 애향심이 생길 것"이라며 "지역의 역사적 자원과 시민들의 참여를 접목해 의정부만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씨는 "미군과 함께 살았던 의정부 사람들의 역사가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면서 "젊은이들이 향군클럽의 가치를 알아주고 이렇게 나서줘 기특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