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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 왜곡을 개선하라고 경고했다. 일본이 2015년 6월 '군함도'(端島·하시마섬) 등 7곳의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을 포함한 23곳의 근대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약속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 미이행에 대한 비판 결정문을 채택한 것이다. 일본의 기만적인 세계유산 등재는 이번만이 아니다. 히로시마 원폭 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당시,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과 핵전쟁의 참혹함을 증거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세계문화유산 지정 후에는 평화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입은 전쟁의 피해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심지어 우익의 재무장론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해왔다. 일본의 기만행위만 질타할 때가 아니다. 역사와 기억을 대하는 우리 사정도 그리 떳떳지 않기 때문이다. 

 

강화도 관방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무산
개항장 문화지구·캠프마켓도 논란 이어져


인천시는 강화도 관방유적의 가치를 알리면서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 왔다. 일본 군함 운요호의 침략현장인 강화 초지진과 미국 태평양 함대가 조선 수비군을 궤멸시킨 광성보를 비롯한 강화도 관방유적은 조선후기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여러 세계열강과의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들로, 세계유산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2016년 문화재청의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잠정목록까지 제출하였지만 강화군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위원회에서 한국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는 '경사'가 있었지만, 한국 최대 규모의 강화갯벌은 정작 포함되지 못했다. 주민들의 어업활동 위축을 우려한 강화군의 반대 때문이다.

개항장 문화지구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3년에는 구청장이 개항장 문화지구 일대의 건축물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인천시에 건의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2015년에는 중구 주민들이 식민지기에 건축된 일본식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한 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묶어 지역 일대가 쇠퇴하고 있으며 재산권 침해가 크다며 인천시가 문화재 지정을 해제하고 해당 문화재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민청원을 벌인 적도 있었다.

부평구 캠프 마켓 시설물에 대한 논란도 유사하다. 일본육군조병창에서 애스컴(ASCOM)을 거쳐 캠프 마켓까지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캠프 마켓 인근 주민들은 일제 잔재이거나 미군 주둔 시설에 불과하므로 철거하고 편의시설을 도입한 호수공원으로 조성하기를 선호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의 부지 활용 기준은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인 것이다. 공동체의 역사적 가치와 주민들의 자산 가치가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일꾼교회, 주택재개발사업으로 철거위기
규제·재산권 침해 최소화 '배려행정' 절실


한국의 산업화와 한국노동운동사와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사적지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일꾼교회)도 '화수화평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철거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일꾼교회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고려하여 존치를 강력하게 요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계획위원회는 표지석 설치를 조건으로 철거를 승인했다. 현재 인천시민단체들은 인천시에 인가 고시를 철회하고 재심의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범시민 서명운동과 항의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자원은 문화적 창조력의 원천이며 도시재생사업의 핵심 자원이다. 그러나 고유 문화자원의 보존과 관리과정에서 주민들과의 이해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문화자원의 가치에 대한 사전 논의와 평가를 거쳐 주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 문화유산 등록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문화유산 등록에 따른 규제를 최소화하고 재산권 침해에 대한 저감 조치와 보상 방안 등을 사전에 검토해 두는 '배려 행정'이 절실하다. 각종 문화유산 갈등 사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따로 마련해야 한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