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문화재단이 추진한 '100만원 실험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시민 실험지기들이 워크숍에서 아이디어를 나누며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의정부문화재단 제공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100만원을 주고, 각자 지역을 위한 문화활동을 벌이도록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5월 의정부문화재단은 특별한 실험을 했다.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평소 동네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 '나의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문가 멘토링과 실행비용을 지원한 것이다. 이름하여 '100만원 실험실'.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재단은 시민에게 지원금 100만원을 무정산으로 지급하는 통 큰 결정을 했다. 시민에 대한 신뢰가 담보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9명 선발 자유 기획 비용 지원 참가자들, 새 이웃 '웰컴패키지' 세대간 화합 영상 등 제작 성과
처음으로 시도하는 사업이었지만, 지원이 쏟아졌다. 신청서를 접수한 5일 동안 선발 인원의 두 배가 넘는 78명이 지원서를 냈다. 의정부에 문화활동에 관심이 있고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을 정도였다.
미처 예상치 못한 인기에 놀란 재단은 급히 사업 예산을 늘리고, 아쉽게 탈락한 지원자까지 다시 모아 59명의 시민 실험지기들이 기획자가 되는 48개팀을 구성했다. 그렇게 선발된 실험지기들은 2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예술 종사자도 있었고, 관련 경력 없이 열정으로 참가한 사람도 많았다. 실험지기 중 30%는 과거 공공기관의 공모사업에 참여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시민이었다.
의정부문화재단이 추진한 '100만원 실험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민성씨가 시내에 설치한 꽃다발 구급박스(사진 왼쪽)와 정인숙씨가 기획한 반려동물 콘서트 /의정부문화재단 제공
48개팀이 각자 아이디어를 내 추진한 프로젝트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이 넘쳤다. 한 참가자는 비상시 쓸 수 있는 꽃다발을 지역 곳곳에 비치하는 실험극(비상시엔, 꽃다발 구급박스 !)을 시도했으며, 또 다른 참가자는 반려동물을 위한 콘서트(반려동물 콘서트)를 열었다. 의정부를 대표하는 시민 노래를 만들어 버스킹 공연도 하고, 기후위기를 생각하는 온라인 챌린지를 시작한 참가자도 있었다.
시각디자이너 성민희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의정부 웰컴 패키지'를 만든 뒤 1년 이내 의정부에 새로 이사 온 이웃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했다. 성씨가 만든 패키지에는 직접 만든 의정부안내서부터 실생활에 필요한 쓰레기종량제봉투, 의정부의 모습을 담은 그림엽서, 자석 병따개 등이 담겼다.
이제 막 이 도시에 발을 들인 사람에게 따뜻한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특히 성씨가 직접 디자인한 안내서에는 전입세대가 알면 좋을 의정부의 지리와 주요 복지 정책, 교통, 생활팁 등 각종 정보가 알차게 적혔다. 무엇보다 새롭게 의정부에 터를 잡은 이웃에게 전하는 환영의 마음이 잘 담긴 꾸러미였다. 실제 '의정부 웰컴 패키지'를 받은 한 주민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언박싱 후기'를 올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패키지를 받지 못한 한 주민은 '저는 못 받았어요. 어디에서 받을 수 있나요'라는 글을 지역 커뮤니티에 올리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성씨는 "수년 전 처음 의정부에 이사 왔을 때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냈다"며 "이제 막 이 도시에 발을 들인 사람에게 따뜻한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의정부문화재단 '100만원 실험실' 프로젝트에 참가한 김윤하·이옥임·이순주·황승찬씨 팀이 만든 '몸으로 전하는 사랑' 영상. 이옥임 할머니의 실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들은 집안에서 게임하는 손자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춤을 제안하고, 둘이 함께 추는 춤을 통해 화합한다는 내용의 영상은 코로나19로 바뀐 일상과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유튜브 영상 캡쳐
김윤하·이옥임·이순주·황승찬씨 팀은 '몸으로 전하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미디어 작품을 완성했다. 코로나19와 집, 그리고 아이와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설명처럼 영상은 팀의 구성원인 이옥임 할머니와 손자 모준우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안에서 게임하는 손자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춤을 제안하고, 둘이 함께 추는 춤을 통해 화합한다는 내용의 영상은 코로나19로 바뀐 일상과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김윤하씨와 안무가인 이순주씨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김씨는 "팀원들을 잘 만나 소통이 잘됐다. 손자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이 할머니의 바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체조같은 쉬운 동작을 통해 시민들이 보고 따라할 수 있는 영상을 다시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7월까지 3개월간의 실험이 끝나고 재단이 성과를 정리하자, 48개 사업을 위해 실험지기 외에도 317명의 시민이 스텝으로 실행을 보조했으며 이를 통해 2천500명의 시민이 관객 등으로 참여해 함께 문화를 즐긴 것으로 집계됐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지난 7일 온라인으로 열린 '100만원 실험실'의 최종 활동 공유회에 참가한 시민 기획자들의 모습. /의정부문화재단 제공
시민 참가자 한 명 한 명은 앞으로 의정부 문화를 만들어갈 토대이자 자양분
지난 8월 7일 사업의 최종성과공유회에 참가한 한 시민은 "100만원 실험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도전이었다. 이런 생각, 이런 방식도 가능하구나 하는 지지를 얻으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시민 실험지기는 "백만원 실험실을 통해 지역문제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무엇보다 기뻤다. 하반기엔 이들과 함께 확장된 실험을 더 시도해보자며 오늘 의기투합했다."며 백만원실험실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향후 지역에서의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무엇보다 '100만원 실험실' 프로젝트의 성과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와 열망을 확인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지역사회 문화활동에 나서 줄 시민 활동가를 다수 확보했다는 데 있다.
'100만원 실험실' 프로젝트의 사업 모델을 설계해 재단에 제안한 시민 기획자 이한솔 씨는 "이제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엔 관 주도 사업이 많았다면, 이제는 시민 스스로 지역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는 시대가 됐다"며 "100만원 실험실에 참여한 시민 참가자 한 명 한 명은 앞으로 의정부 문화를 만들어갈 토대이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문화도시 사업도 도시와 시민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