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한강하구는 오랜 시간 금단의 땅이었다.
특별하고 온전한 자연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이자 철새들의 터전인 이곳을 윤순영(67)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올해로 꼭 30년째 지키고 있다.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한강의 순수한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에 담아내며 응시해왔다.
윤 이사장은 말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자연은 무의미하게 사라집니다. 자연은 우리의 벗입니다."
참 즐거운 시절이었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60년대 초반, 꼬마 윤순영에게 한강은 부족할 것 없는 종합놀이공원이었다.
봄날 들녘의 삘기(띠의 새로 돋아나는 순)에서 솜처럼 생긴 알맹이를 뽑아 껌처럼 씹으면 달콤한 즙이 입안에 감돌았다. 여름에는 한강으로, 계양천(한강지류)으로 발가벗고 뛰어들었다. 물이 얕아지면 한강에서는 재첩을 잡고 계양천에서는 물고기를 손으로 더듬어 잡았다.
짝짓기를 돕겠다며 암컷 왕잠자리 허리에 실을 매어 공중에 돌리는 짓궂은 놀이도 하고, 동생들에게 뜀뛰기 시합을 시켜 등수대로 잠자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한강 제방에 묶인 소의 똥을 헤집으면 소똥구리가 있었다. 고무신에 강물을 퍼와서는 소똥구리가 파놓은 구멍에 물을 부어 잡았다.
본격적인 가을이 오면 메뚜기사냥이 시작됐다. 소주병에 차곡차곡 쌓거나, 풀 줄기에 훈장처럼 꿰어 가져가 참기름에 볶았다. 논두렁에 심은 콩은 훌륭한 영양공급원이었다. 논에서 생불에 구워 먹으면 금세 입 주변이 시커멓게 변했다.
민물과 썰물이 넘나드는 계양천은 겨울마다 물이 교차하는 힘 때문에 두꺼운 얼음이 자연적으로 깨져 나갔다. 조각난 얼음 뗏목을 개구쟁이는 물 위에서 둥둥 타고 다녔다. 한밤중 말라비틀어진 소똥과 나뭇가지를 연료 삼아 불붙인 깡통도 숱하게 돌렸다.
이 모든 게 윤 이사장의 고향인 한강하구와 재두루미의 안식처인 김포 홍도평에서 있었던 일이다.

윤 이사장은 "70년대 초까지 한강에는 군 경계철책이 없어 언제든 강가에 드나들 수 있었고 또래들과 함께 벌흙을 온몸에 바르고 놀았는데 비누의 매끄러움보다 감촉이 더 좋았다"며 "위험하다면서 강가에는 가지 말라시던 어머니는 내가 종일 놀다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손목부터 붙잡고 팔을 긁으셨다. 그러면 피부에 덮여있던 벌흙이 하얗게 일어 혼쭐이 나곤 했다"고 회상했다.
한강하구인 김포시 북변동·사우동 일대 홍도평에는 과거 재두루미가 한 번에 최대 120마리씩 도래했다. 북변동에서 나고 자란 윤 이사장은 김포의 자원이라 할 겨울 진객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1992년부터 야생조류의 생태를 추적했다.
윤 이사장의 활동범위는 국내 전체다. 필요한 경우 여권도 챙긴다.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KBS '환경스페셜'팀과 합동프로젝트로 일본과 러시아를 오가며 세계 최초로 동아시아지역 재두루미 이동 루트를 밝혀낸 인물이다.
2017년에는 군산 새만금에서 3일간의 기다림 끝에 국내 최초로 홍학 촬영에 성공했다. 동물원에서 데려다 촬영한 게 아니냐고 의심받을 정도로 생생하게 담아내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군산 새만금에서 3일간의 기다림 끝에 국내 최초 홍학 촬영 성공
환경영향평가에서 '허점' 제시 김포한강생태공원 탄생 이끌어내
윤 이사장은 "간혹 자연을 극적으로 연출하려고 무리해서 촬영하는 사례가 있다는데 맹금류는 4㎞ 거리의 먹이도 포착한다. 사람이 아무리 숨고 위장해도 새들은 다 안다는 것"이라며 자연과의 인위적인 만남을 경계했다.

'아파트숲' 위기에서 새들의 땅을 지켜낸 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성과다. 윤 이사장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 인공조류서식지로 조성된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이 개발압력에서 비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래 생태공원 62만8천여㎡ 부지에는 A기업 농장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2001년 김포한강신도시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 부지만 신도시계획에서 빠져 있었다. 한강 조망권이 워낙 뛰어난 곳이라 얼마든지 민간에 매각돼 개발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윤 이사장은 신도시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결과에서 중대한 허점을 찾아냈다. 멸종위기종 재두루미가 분명히 날아드는 위치인데도 평가에서는 두루미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식으로 분석해놓았다. 그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문제시해 1년에 걸쳐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게 만들었다.
결국 A기업 농장도 신도시계획에 포함되면서 추가 확보된 면적만큼 조류 서식지를 조성할 것을 정부에 끈질기게 촉구, 국내 처음으로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생하는 광활한 생태공원이 탄생했다.
윤 이사장은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훼손하고 있지 않냐"며 "자연은 질서에 의해 돌아가고 순리적으로 자신의 질서를 되돌리려는 관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견해로 나는 자연이 그렇게 질서를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기후변화가 발생한다고 본다. 예컨대 물길이 훼손됐을 때 자연은 순리대로 물길을 회복해가는데, 물길을 되찾아갈 때의 현상과 기후변화 현상이 비슷하다"고 부연했다.

윤 이사장은 곳곳에서 특강 요청을 수시로 받는다. 문서로 미리 준비하지 않고 경험했던 날 것 그대로를 열강하니 '콱 콱' 꽂힌다며 인기가 많다. 최근 KBS는 그의 활동상을 중심으로 한강하구의 보전방향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3개월 일정의 촬영에 돌입했다.
강단에 서고 글도 쓰고 언론에 부지런히 메시지를 전하고는 있지만 그는 미래세대에 보여줄 실제 자연, 다시 말해 희망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한강의 천혜 자연을 지키기 위해 15년여 전부터 한강하구의 람사르협약 등재에 노력해온 그는 배웅을 해주며 다음과 같은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인간이 곧 자연이야. 쉬운 얘기 같지만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어. 사람들도 이걸 알면 좋겠는데 말이지."
글·사진/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 윤순영 이사장은?
▲ 1954년 김포 북변동 출생▲ 2001년 KBS와 협력해 동아시아 재두루미 이동경로 규명▲ 2003년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부지 기부채납 기여▲ 2007년 환경재단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선정▲ 2008년 제10차 세계 람사르총회 재두루미 사진 초대전▲ 2009년 국회 초청 재두루미 사진전▲ 2013년 저서 '생명의 강, 희망의 날갯짓' 발간▲ 2019년 세계생물다양성의날 및 세계습지의날 대통령 표창▲ 현 사단법인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현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애니멀피플' 필진▲ 현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