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ㄻㄹ.jpg
29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현장의 모습. 2021.9.29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2021년 터져 나온 '대장동 의혹'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꼬박 10년 전인 2011년의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택지개발 계획 반영(2004년)→공공개발 추진(2009년)→공공개발 무산(2010년)→민관공동사업 결정(2013년)까지 여러 차례 개발 주체가 변경되는 부침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취임한 2010년부터 저축은행 사건이 터진 2011~2012년 사이에 대장동 개발은 여러 변화를 맞게 된다. 복수의 취재원에 따르면 당시 대장동 개발의 패권을 쥐고 있었던 건 민간 사업자인 이모씨로, 이씨는 저축은행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토지주 작업에 쏟아부었다.

민간 사업자가 대상 토지의 70%를 확보하면 수용이든 환지 방식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개발이 가능한데, 토지 확보를 위해 토지주에게 계약금(토지 금액의 10%)을 우선 지급하고 개발 동의서를 받는 것이다. 당시 저축은행권은 이른바 '브릿지 론'이라는 이름으로 토지 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브릿지 론' 만들어 고이율 대출
지주작업 벌인 흔적 파산후 압류
나인하우스 '페이퍼컴퍼니'인 듯


이는 개발사업을 위한 실제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조성되기 전 지주 작업에 쓰이는 자금인데, 저축은행끼리 컨소시엄을 이뤄 브릿지 론을 만들어 고이율의 대출을 일으켰다.

계약금을 건네면 등기부등본상에는 가등기로 표기되고 저축은행 명의의 근저당이 설정되기 때문에 이런 지주작업의 흔적은 대장동 개발사업 직전에 만들어진 '토지조서'에서 확인된다.

개발 당시 대장동 토지조서에는 대장동을 구성하는 904개 토지와 각 소유주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대부분의 소유주는 종친회이거나 개인의 이름이다.

이 사이에서 '주식회사나인하우스'와 '주식회사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라는 이름이 각각 41차례·35차례 나타난다. '나인하우스'의 정체는 토지조서에서 추론할 수 있다.

나인하우스가 지분을 보유한 토지에는 '부산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저축은행을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지주 작업을 벌인 흔적이다. 해당 자금을 끌어온 저축은행이 파산하면서 예금보험공사로 압류됐다는 것이다.

 

'전방위 로비' 남모 변호사 구속후
천화동인 핵심 역할 2011·2015년
민간사업자 구도 변화가 의혹 열쇠


결국 나인하우스는 이전부터 지주 작업을 벌여온 민간 사업자의 페이퍼컴퍼니로 유추된다. 주식회사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는 천화동인 4호 투자자로 알려진 남모 변호사가 대표를 맡으며 화천대유의 전신 격인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로 명칭을 바꾼 회사다.

이처럼 민관공동개발이 확정되기 전부터 대장동은 이미 상당한 지주작업이 완료된 상태였다. 1천200억원을 조달해 대장동 개발을 추진한 민간 사업자 측은 "민간개발이 성공하면 수익이 1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민간개발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결국 전방위적 로비를 펼친 대가로 지난 2015년 구속된다.

당시 천화동인 4호 투자자이자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 대표 남모 변호사도 구속됐다. 남 변호사가 구속 이후에도 천화동인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친 대장동 민간 사업자 구도의 변화가 결국 현재 대장동 의혹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민간개발이 절대적인 우선 순위였고 민관공동개발을 선호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