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동구바이오제약 향남공장. 각 분야를 대표하는 경기지역 기업인들이 한데 모였다. 저마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편 더 많은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왜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가운데 앉은 그는 차분히 모든 얘기를 들었다. "검토해보겠다"고 형식적으로 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선 "솔직히 쉽지 않다", "그건 죄송하지만 어렵다"고 선을 긋는가 하면, 오히려 "저희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있으니 기업인 여러분들도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동시에 "혁신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변화에 대응하는 순발력이 중소기업에 훨씬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혁신의 힘을 역설했다.
고개만 연신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에 진정성이 묻어나왔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얘기다.
기업인들과의 간담회 이후 잠시 만난 권 장관은 이날 동구바이오제약을 찾은 데 대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혁신형 기업들이 성장했다. 제약 기업들이 특히 그랬다. 이곳 동구바이오제약도 혁신형 제약기업인데, 그런 부분을 국민들께 알리고 직접 살펴보고 싶어서 왔다"고 설명하면서 "혁신의 힘을 괜히 얘기한 게 아니다. 지금은 혁신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과거처럼 조금만 밀리는 게 아니라 일순간 완전히 뒤처지는 상황에 놓인다. 중소기업에서 나올 수 있는 혁신의 힘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북돋아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직원부터 중기부 장관까지 "책임감 매우 큰 자리"
장관으로 일한지 8개월 남짓. 지금은 국내 중소·벤처기업과 자영업자·소상공인 관련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한때는 한 기업의 직원이었고 스스로 작은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 정치에 입문해 당 사무처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했고 경기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 권칠승'의 행보를 시작했다.
기업 직원·사업·의회 등 다양한 경험했지만 세세히 들여다봐야하고 책임감 큰 자리
소상공인 등 건의 '1.4일만에 1건씩' 해결… 올 중기 수출·벤처 투자 역대 최대 '밑거름'
'위드 코로나' 시대 경영 안정 가장 큰 목표… 곧 대선 국면 이양기 혼선 최소화도
도의원을 넘어 국회의원에 도전,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고 지난 2월 장관에 선임됐다.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권 장관이지만 8개월의 소회를 물으니 "평소에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소상공인 등 건의 '1.4일만에 1건씩' 해결… 올 중기 수출·벤처 투자 역대 최대 '밑거름'
'위드 코로나' 시대 경영 안정 가장 큰 목표… 곧 대선 국면 이양기 혼선 최소화도
"제가 좀 여러 경험을 한 편이지 않나. 기업체에도 6년 이상 있었고 저 혼자서 조그만 일을 해보기도 했다. 행정부에도 있었고 지방의회, 국회 생활도 했는데 그런 경험을 모두 통틀어봐도 지금 자리는 곳곳을 아주 세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데다 책임감도 큰 자리"라고 중기부 장관직의 '무거움'을 설명한 그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많이 느낀다. 그나마 그동안 경험해왔던 부분들, 그리고 중기부 공직자들의 지혜를 모아서 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었던 지난 2월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그에겐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1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19 사태에 경기는 침체됐고 기업인들, 소상공인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래서 쉴새 없이 현장에 다녔다. 이날처럼 일선 기업인·소상공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살핀 것만 지난달 말까지 122차례. 중기부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모두 233건의 건의를 받아 165건을 해결했다. 1.4일 만에 1건씩을 해결한 셈이다.
노력은 어느새 실적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의 수출이 565억 달러로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달성하는가 하면, 벤처 투자 실적도 지난 8월 기준 4조6천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권 장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업인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지속돼 16조원에 이르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긴급 융자 등을 통해 버팀목을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잘 해내고 있다.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걸림돌 없이 앞으로 쭉 갈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을 갖고 탄탄대로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차질 없이 진행…혼란 없이 '회복·상생·도약'에 중점
27일은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 대한 손실보상 신청 접수가 시작되는 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손실이 크지만 집합금지·영업시간 제한 대상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손실보상에서 제외된 업종에서 반발이 거센 와중에 80% 보상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손실보상 대상을 확대해달라는 건의가 있었다.
권 장관은 기업인들의 건의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면 손실보상이라는 게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다. 소상공인 분들께서 체감하는 손실과 회계적으로 보는 손실은 다를 수 있다. 제도로써 이를 만들어 지원하다 보니 어떤 기준을 정해야 하고, 그렇다 보니 오히려 많은 손실을 본 업종에서 이 제도로는 보상을 받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별도의 지원책을 찾고 있다"고 허심탄회하게 답했다.
간담회 이후 잠시 만난 자리에서도 권 장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사실 모든 국민, 모든 업종이 고통을 겪고 있다. 집합금지·영업시간 제한 등의 방역 조치 대상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사업체와의 형평성, 그리고 해당 방역조치가 없었더라도 아마 코로나19 등으로 20% 정도의 영업 이익 감소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분석에 80% 보상이 결정된 것"이라며 "손실보상 대상이 아닌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피해 회복 지원에 적극 노력해 왔지만 타격이 큰 경영 위기 업종에 대해선 추가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관계 부처와 지원 방안을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동시에 손실보상 대상에 포함되는 소상공인들이 온라인으로 보상금을 빠르게 신청하고 지급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수 많은 소상공인들의 손실 규모를 구체적으로 산정하고 보상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각 지자체의 방역조치 시설 명단과 국세청의 과세 자료를 기반으로 구축된 DB를 통해 보상 규모를 사전에 산정하는 한편 소상공인들이 산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 추가 증빙 서류를 통해 심의하는 방식으로 발 빠르게 지급하겠다는 게 중기부 측 계획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지만 여전히 코로나19에 따른 상흔이 깊은 기업인·소상공인들의 경영 안정이 권 장관의 가장 큰 목표다.
'회복·상생·도약'이 기본 방향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경영 회복을 돕는 한편 성장 역량이 있는 혁신 기업·벤처들을 육성하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탄소 중립, ESG 경영 등 숨 가쁜 변화의 흐름에 중소·벤처기업들과 소상공인들이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 역시 그의 역할이다.
권 장관은 "곧 대선 국면이고 내년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이양기에 혼선이 생길 수 있는데 안 그래도 어려움이 큰 기업인·소상공인들에게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그러려면 방향 설정을 확실히 해야 하고 보다 책임감 있게 임해야 한다. 중기부가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도 혁신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직후 그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급히 해결했다. 26일에도 권 장관은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파주에서 경기북부 기업인들을 만났다. 어김없이 경청했고, 해야 할 말을 숨기지 않은 채 허심탄회하게 소통했다. 혁신은 다름 아닌 그의 잰걸음에서 나오고 있었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 권칠승 장관은?
▲ 1965년생. 경북 영천 출생.▲ 경북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8년 삼성그룹 공채 28기로 입사▲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 대선기획단에서 활동▲ 1998~2004년 민주당 중앙당 사무처에서 근무▲ 2004~2008년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2010년 민주당 중앙당 상근부대변인▲ 2010~2016년 경기도의원▲ 2016년~현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화성병)▲ 2016~2018년 더불어민주당 중소기업특별위원장▲ 2018~2019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2018~2020년 더불어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 2020년~현재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 2021년 2월~현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