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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수납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좁게만 느껴지던 공간이 넓어지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품은 공유할 수 있다. 사진/한국정리수납협회 제공,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오랜 기간 가사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정리 수납이 하나의 전문 기술이자, 산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나와 가족, 그리고 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TV, 냉장고와 같은 가정 가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정리 수납 분야가 전문화됐다는 것이다.

'호캉스(호텔+바캉스)'가 유행하는 이유가 집이라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각종 잡동사니, 계절 옷과 같이 언젠가 쓰임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물건들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설거지거리나 쓰레기도 물론. 바꿔 생각해보면 정리 수납만 잘돼도 매일이 호캉스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리 수납 업계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리 수납도 사업
인류가 집을 짓고 정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리 수납은 일상적인 가사 노동으로 취급을 받아왔다. 특히 전통적으로 주부 등 가사에 보다 많은 책임을 지고 있던 이들은 체계적인 정리 수납 기술을 배우기도 전에 '실전(?)'에 투입됐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정리 수납에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미국의 주부 5명이 모여 정리수납 관련 협회를 꾸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으로 정리 수납에 대해 교육하고 가사 도우미나 육아 도우미와 같이 정리 수납을 하나의 사업으로 키웠다.

우리 사회도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전문적 정리 수납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과거 상점에서 필요한 물품만 필요할 때 사던 것과 달리 다량 구매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 사람이 소비하는 물품이 늘어난 만큼 과거 '끼워넣기'식의 정리수납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리 수납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좁게만 느껴지던 공간이 넓어지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품은 공유할 수 있다.

단순히 물건을 버렸을 때 생기는 '마이너스'의 개념이 아니라 공간을 늘리는 '플러스', 필요없는 물건을 나누면서 환경을 살리는 '플러스'가 가능한 것이다.

이에 전문 정리 수납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 12만명이 정리 수납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고 현재 2만~3만명에 달하는 전문가들이 정리 수납 업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리 수납은 또 정리 수납용품에서부터 이사 업체 연계 서비스 사업 등과 연계될 수 있어서 향후 가치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2만명 교육·2만~3만명 활동… 이사업체 연계 등 더 성장 가능성
우울감·저장강박 겪는 이들에 정리수납협회 '콩알봉사단' 활약
경력단절 여성 대상으로 보다 쉬운 취업·사회진출 기회 제공도
정리 수납의 사회적 가치

정리 수납은 상업적 가치는 물론, 사회적 가치로도 주목을 받는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둬 이웃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저장 강박(호딩장애)'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 취약계층뿐 아니라 최근에는 청소년들까지 우울감이 저장 강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정리수납협회 관계자는 "저장 강박을 앓고 있는 경우, 쌓아놓은 쓰레기와 짐 때문에 집이 더 이상 쉼의 공간이 아니게 된다. 마음이 쉬지 못하니 증상이 악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며 "수납 정리만으로도 우울감을 덜어줄 수 있어 복지사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리수납협회는 전문 교육과정과 함께 '콩알봉사단'이라는 단체를 운영하면서 지역에 저장 강박을 앓고 있는 가구를 방문해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펼친다.

지난 2012년 정리수납전문가들로 구성된 봉사단은 수원을 비롯한 전국 8개 지부를 두고 정리수납과 노숙인 무료급식 등을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서울시 주거복지센터와 협약을 통해 서울시 1인 가구 소외계층 정리 수납을 돕는다.

경력단절 여성에게 사회 진출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것도 정리 수납이 갖고 있는 사회적 가치다. 가정주부 생활 20년이라면 정리 수납 경력도 20년이기 때문에 모두가 전문가가 갖춰야 할 자질을 가지고 있다. 정리 수납 전문가로 진출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리 수납을 가사의 영역으로 두면 '정리를 잘한다'에 머무는 수준이지만, 전문 전리 수납을 거치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쩌다 한 번 정리해놓고 쓰다가 다시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늘 처음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규칙이 생긴다.

결국 육아, 가사 등의 이유로 사회적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전문적 규칙을 배워 전문가가 된다면 보다 쉽게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된다.

정리 수납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직업으로 정리 수납이 왜 필요한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정리 수납 업계의 잠재력을 잘 활용하면 사회적 가치는 물론, 경제적 가치까지 모두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정경자 한국정리수납협회 협회장 "공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집 좁게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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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는 비움과 채움과 나눔입니다."

한국정리수납협회 정경자(사진) 협회장은 정리 수납을 '실천하면 공간은 넓어지고, 생활은 편리하게, 비워진 공간은 바르게 채우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정 협회장은 한 기업의 해외법인 대표로 근무하던 시절 처음 정리 수납이 하나의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넷 쇼핑이 태동하던 2000년대 초반, 사람들이 손쉽게 물건을 구입하게 되면 정리 수납의 중요성이 떠오를 것을 직감한 정 협의회장은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정리 수납업체를 준비했다.

정 협의회장은 "처음 정리수납 업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모든 사람이 '그건 사업이 될 수 없다'고 만류했다"며 "그래도 확신이 있어 정리 수납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8년간 집안 살림을 뒤집고 정리하기를 반복하면서 정리 수납 매뉴얼 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정 협의회장은 "매뉴얼을 만들다 보니 '난 정리 수납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단순히 쌓아두는 것이 아닌 시스템으로 정리 수납을 하는 방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매뉴얼이 있어도 사용을 못하면 허사, 정 협의회장은 먼저 베이비시터 업체를 열고 베이비시터들에게 정리수납을 교육했다. 자연스레 정리 수납도 전문영역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이다.

10년 가까운 고생 끝에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정리 수납이 하나의 전문 분야임이 알려지면서 2011년 협회를 출범했다.

정 협의회장은 "대부분, 90%의 가정은 수납공간이 없는 게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집을 좁게 쓴다"며 "정리수납으로 공간은 더하고, 물건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한국에서도 정리수납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박람회 등을 개최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리 수납의 가치를 나누고 싶다"며 "또 중국 등에 진출해 또 다른 한류를 만들어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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