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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가 지난 1일 오후 수원의 한 특성화고 앞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및 노동조합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지난 달 여수에서 특성화고 3학년 홍정운군이 현장실습 중 숨지며 불안한 실습 현장의 문제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특성화고 노동조합 활동을 둔 학교와 노조 간 갈등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학교 앞에서의 노조활동을 학교 관계자들이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현장실습 중 학생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은 상황이다.

노동조합 활동 둔 학교VS노조 간의 갈등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이하 경기지부)는 지난 달 27일, 수원 A특성화고 앞에서 '제2의 고 홍정운님 재발 방지 대책 마련 8대 요구'와 '최저임금 미달 현장실습처 제보'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서명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교사 여러 명이 막아섰다.

경기지부에 따르면 A고교의 한 교사는 "학생들의 학적이 학교에 있으니 학생들에 대한 '소유권'을 우리가 갖고 있다. 허락 없이 서명 받지 말라"며 "학생들은 아동이라고 볼 수 있어 의사결정 권한이 없으니 사전에 교사들에게 내용을 검토 받은 후 허락받고 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경기지부는 해당 발언에 반발하며 A고등학교 앞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및 노동조합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윤설 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성화고는 노동조합과 관련된 노동인권 교육이 의무화 되어있음에도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교사들이 갖고 있고 그것을 공적인 자리에서 표현하는 것이 문제가 있음을 교사들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특성화고는 와전된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A고교 교사는 "무슨 내용의 서명인지 보여준 적도 없었고, 학교는 개인사유지니 다른 곳에 가서 서명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했을 뿐"이라며 "학생들의 소유권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학생들의 학적이 학교에 있다는 말이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경기지부는 지난 달 13일에도 수원의 B특성화고 앞에서 '헌장실습에 투입되는 도제 실습생들의 정규직 전환' 내용이 담긴 안내문을 학생들에게 배포하다가 학교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했다.

안내문에는 '외부평가에 합격한 경우 학습근로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명시된 '산업현장 일·학습 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 제24조'에 대한 내용과 함께 노조 가입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기지부에 따르면 유인물을 배부하자 해당 학교 교감은 "노동조합 가입 내용이 포함되어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교사는 안내문을 손으로 찢으며 "노동조합이 한국사회를 좀 먹는 것도 모르면서 학교 앞에서 나눠주냐"며 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B특성화고 교감은 "노조에 대한 문제의 발언은 교사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정식으로 만나 뵙고 사과드렸으며 노동인권에 대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학교에서도 교육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역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서명을 받았던 시기가 특성화고 신입생 모집 기간과 겹쳤고, 노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대응을 잘못한 것 같다"며 "교육청 차원에서의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 중이며, 대책을 만드는 대로 학교에 안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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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는 학교 담벼락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반복되는 특성화고 실습현장 사고,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며 실습 현장의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17년 LG유플러스 하청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모양이, 같은 해 11월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군이 숨졌다.

사고가 잇따르자 교육부는 지난 2017년 '실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기준이 강화돼 현장실습에 지원하는 기업이 감소하며 불과 1년 만에 참여 기준이 완화됐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집에 따르면, 교육부가 기업 선정 기준을 완화하자 2019년 산재 건수는 6건으로 2018년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홍정운군이 다녔던 회사 역시 완화된 기준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현장 실습생은 여전히 근로자로서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해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 조항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경기도의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 역시 기업의 고용 부담을 이유로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는 특성화고 2~3학년생이 기업에 가 이론, 실무를 동시에 배우는 현장 중심 교육훈련 제도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용인정) 의원은 경기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교육훈련 협약서를 들여다봤더니 실제로 근로자 신분보장이 없고 최저임금 보장이 안 된다. 주 2회 휴일보장도 없다. 계약서에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재정 교육감은 "기업들이 고용 부담 때문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실제 운영하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노동조합 측은 열악한 현장실습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하며, 학생들이 위험한 업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학교가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난 달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이 경기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만18세 학생의 정당가입, 교내 집회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학교 앞 노동조합 활동 역시 헌법상 보장된 권리지만, 일선 학교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도현 특성화고 노동조합 경기지부 사무국장은 "2년 이상의 도제실습이 아닌 이상 현장실습을 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노동조합에 가입만 할 수 있을 뿐 완전한 근로자로 현장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법적으로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한다고 해도 교사들의 인식이 바뀔지는 모르겠다"며 "세상은 변했는데 학교 현장에서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