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기사 (법관련)6
송달간주, 통·번역 서비스, 어려운 용어와 법전으로 둘러친 성역 등 불친절한 법원 앞에서 개인은 큰 장벽을 느낀다. 사법 절차에서 불편을 겪진 않았는지 살피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건 법원의 역할이다. 좋지 않은 일로 법원을 찾은 국민들이 법원의 불친절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다. 법원에도 국민을 위한 적극 행정이 필요한 이유다. /기획취재팀

IT강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스마트폰 하나로 각종 행정 정보를 손쉽게 고지받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선보인 지능형 '국민 비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날짜도 네이버나 카카오톡 등으로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원만큼은 예외다. 법원은 여전히 우체국에 의존해 법원 문서를 국민들에게 보낸다. 국민들이 해당 문서를 잘 받았는지는 관심 밖이다. 소송 당사자가 법원이 보낸 문서를 받지 못했어도 법원은 받았다고 간주한다. 법원 용어로 이를 '송달간주'라고 한다.

이는 법원 편의주의의 최고봉이다.

법원은 피고의 집 앞에 노크를 하고 돌아서는 인편 송달을 몇 차례 한 뒤 민사소송법 제189조(발신주의)에 따라 법원이 문서를 보낸 시점에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마무리해버린다. 어떠한 사정으로 주소지를 비웠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내가(법원) 보냈으니 너는(국민) 받은 것이다. 이런 논리인 셈이다.

법원의 이런 행태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해외 오가며 집 자주비운 강씨
집배원 몇번 방문후 무변론 선고
소액 손배 대응 못해 '재산압류'

수원시 권선구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인 강모(60대)씨는 집 안에 있던 삼성 파브 텔레비전 1대와 김치냉장고, 입식에어컨을 합쳐 총 155만원어치 가전제품을 압류 당했다.


체육인인 강씨는 러시아를 오가며 태권도, 유도, 당수도 등 무도 스포츠 교류 사업을 하느라 자택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 이 시기에 법원에서 보낸 소송가액 500만원짜리 손해배상 소장을 받았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탓에 1심에서 패소하고, 손해배상액이 너무 적어 부당하다는 원고의 항소로 열린 항소심에서도 대응하지 못한 채 지난해 8월 원심 판결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라는 확정 판결을 받았다.

소장을 받아본 뒤엔 법률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소장을 받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강씨에게 있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부주의를 바로잡도록 돕는 게 행정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불친절했다.

백신 알림 활용 '국민비서' 시대
法, 우체국 통한 문서전달 고수

피소 한 달 뒤 강씨의 집 앞에 우체국 집배원이 다녀갔다. 그 집배원은 법원이 발송한 변론기일통지서를 들고 강씨 집 앞에서 초인종을 몇 차례 누르다 돌아갔다. 법원의 언어로 이를 '폐문부재'라고 한다. 문이 잠겨 있고, 받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2주 뒤에 강씨에게 변론기일통지서를 추가로 발송하면서 '송달간주' 처리했다.

 

폐문부재와 송달간주에 따른 변론종결의 끝은 무변론 선고였다.

강씨는 재판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을 변호하지 못했다. 수원지법 민사53단독 소액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에게 50만원과 이에 대하여 2018년 9월11일부터 2020년 1월23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유는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기재하지 않았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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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성배, 배재흥 기자
사진 : 김금보·김도우 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 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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