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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51)는 손기정과 황영조를 잇는 국민 마라토너다. 164㎝ 단신에 평발이란 신체적 불리함을 딛고 올림픽 은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보스톤마라톤 우승을 수확했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30대 후반까지 현역생활을 해 지구력과 꾸준함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국민 사랑을 듬뿍 받은 복 많은 체육인이다. '봉달이'와 '봉주르'란 귀요미 애칭엔 팬들의 애정이 스며있다. 한동안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와 재미와 웃음을 줬다. 망가지고 넘어져도 개의치 않는 순수함과 열정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그가 돌연 사라졌다.

지난봄 TV에 다시 나타난 이봉주는 허리가 구부정했고, 야윈 모습이었다. 희귀 질환인 '근육긴장이상증'을 앓는다고 했다. 1년 전 몸에 갑자기 이상증세가 와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는 게다. 그는 이날 자신의 육상 재능을 발굴해준 은사를 만났다. '몸이 안 좋다 보니 코치님이 더 보고 싶어졌다'며 해맑게 웃었다.

국민 마라토너가 다시 뛰었다. 지난 28일 부천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이봉주 쾌유 기원 마라톤'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결승선을 밟았다. 1.2㎞를 뛰는데 10분 넘게 걸렸다. 전성기라면 3~4분이면 충분했을 거리다. 허리가 여전히 불편해 보였으나 완주에 대한 의지는 단단했다. 잠시 걷거나 함께 뛰는 주자에게 잠시 기대기도 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날 시민 110명이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했다. 2개 조로 나뉘어 4㎞씩 달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영웅 임춘애씨 쌍둥이 아들 이현우·지우군이 이봉주 양옆에서 함께 뛰어 주목받았다. 라면으로 배고픔을 달래며 훈련했다는 임춘애는 이봉주와 변하지 않는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이봉주는 매년 양평에서 열리는 '남한강 마라톤대회'에 빠지지 않는다. 아내 김미순씨, 두 아들(우석·승진)과 함께 달리기도 했다. 출전자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면 웃으며 자세를 잡아준다. 자필 사인을 받으려는 줄이 길어져도 늘 싱글벙글한다. '잊지 않고 알아봐 주는 팬들이 고맙다'면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였으나 아직 완전치 않다. 현역 시절 그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맑고 착한 이미지로 유독 사랑을 많이 받았다. 수술 경과가 좋아 예감이 좋다고 한다. 다시 뛰어야 한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