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법원에 지난해 접수된 사건은 1천883만8천150건이다. 2020년 12월 주민등록 기준 대한민국 인구수가 5천182만9천23명이므로 전 국민의 36.4%가 사법부에 판단을 구한 셈이다.
실생활과 매우 밀접한데도 법원이 국민에게 먼저 제공하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정보 접근성이 현저히 낮다는 의미다. 법원은 그들이 작성한 공문서에 접근할 권한을 매우 제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법관과 동일 선상에서 일반 국민이 미확정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는 곳은 최근까지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있었다. 청사 내 판결정보특별열람실의 PC 4대가 하급심에서 내린 판결 열람이 가능한 유일한 곳이었다.
피고인 이름 또는 죄명, 장소 등 키워드를 입력하면 전국 각지 각급 법원에서 작성한 해당 키워드가 들어있는 판결문을 모두 열람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상징 '서초동 사람들'만 누리던 특권이었다.
대법원은 특별열람실을 코로나19로 9개월여간 폐쇄하다 지난 10월1일 고양시 일산동구 법원도서관 법마루로 이전하고, PC도 6대로 늘렸지만 판결문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고양시 법원도서관에 'PC 6대'
PC 늘렸지만 접근성 비판 여전
판례 참고, 취재 등 업무차 법원 정보에 접근하는 문턱만 높은 것이 아니다. 당사자에게도 법원은 그들이 독점한 정보를 쉽사리 내주지 않았다.
수원가정법원은 지난 8월11일 성범죄 피해자가 민사소송 진행을 위해 요청한 가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인적사항을 소년 보호사건이라는 이유로 정보비공개 결정했다.
법원은 독점한 정보를 사건 피해 당사자에게도 제공할 수 없다는 근거로 소년 보호사건의 기록과 증거물은 소년부 판사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열람·등사할 수 있다는 소년법 제30조의2(기록의 열람·등사)를 들었다. 이 사건은 현재 수원지법 행정2부에서 심리 중이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지난해 1월 안산시립예술단 단원들에게 돈을 건넨 안산시의회 정모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기소내용(공소장 일부)과 검찰 사건번호, 법원 사건번호 공개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예술단 단원들의 제보 이후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 끝에 정 의원에 대한 기소 처분이 나왔다.
단원들이 수사기관에선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고, 형사 공판에는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으나 법원은 당사자를 대리해 변호사가 요청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피해자도 사건기록 보기 어려워
안산지원은 당시 소송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며 비공개 결정했다. 기소내용이 공개될 경우 재판의 심리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도 부연했다.
법무부는 국회가 공소장 제출을 요청하면 구체적인 개인정보만 지우고 제공했다. 피고인과 개별 사건에 따라 선별적으로 공소장을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자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에 따라 원칙대로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는 법무부를 통해 공소장을 받아보는데, 국민은 법원에 넘겨진 사건 기록을 요청하면 정보 통제의 높은 벽에 가로막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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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성배, 배재흥 기자
사진 : 김금보·김도우 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 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