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우리동네 술도가를 찾아서

[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우리동네 술도가를 찾아서·(9)] 3대째 막걸리 만드는 강화 금풍양조장

강화 쌀과 물로 전통에 취하고 문화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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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90년 동안 3대째 막걸리를 빚어온 양조장이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100여 명 넘는 방문객들이 찾아와 여행기를 올리고 막걸리를 사간다.

지난 15일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금풍양조장을 찾았다. 온수리는 1천600년의 역사를 지닌 전등사와 1906년 지어진 성공회 한옥성당 등으로 유명해 오래전부터 방문객이 많아 상권이 크게 형성돼 호황을 누렸던 곳이다. 그중에서도 금풍양조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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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석 금풍양조장 대표.

금풍양조장은 1931년 김학제씨가 창업했다. 양조장 이름은 재물을 의미하는 금(金)과 풍년(豊)의 의미를 담아 '금풍(金豊)'이라고 붙였다. 1969년 양태석 대표의 할아버지 양환탁씨가 인수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다른 사업자에게 임대해 '강화온수양조장'으로 운영하던 것을 지난해 여름 양태석(47) 대표가 이어받았다.



"양조장이 노후되는 게 안타까워 아버지께 양조장을 운영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처음엔 반대하셨죠. 그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거죠."

양 대표는 양조장을 막걸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꾸며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사회에서는 15년간 IT기업에서 기업런칭·전시 등 마케팅을 담당한 그에게 금풍양조장은 새로운 꿈을 펼칠 수 있는 인생의 무대가 됐다.

금풍양조장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한 금풍양조장의 고풍스러운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IT기업서 일하던 양태석 대표, 노후화 안타까워 '새로운 문화공간 목표' 가업 이어
혼자서 술 빚어 한달 2천병 생산… 옛 '금학 탁주' 부활, 내년부터 약주 생산 계획


막걸리는 양태석 대표 혼자서 빚는다. 술밥을 짓고 발효해 병에 담기까지 15일 걸리는데 한 달 2천병 정도를 생산한다. 양 대표는 "혼자서 막걸리를 만들어 많은 양을 생산하기도 어렵지만 예쁘고, 재밌고, 즐겁게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양 대표는 내년부터 약주도 생산할 계획이다. 예전 이곳에서 만들었던 '금학(金鶴) 탁주'라는 상표를 사용하기로 했다. '금학 탁주'는 9.6도짜리 '블랙', 13도짜리 '골드', 9.6도짜리 인삼 막걸리인 '인삶' 등 3개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금풍양조

금풍양조 막걸리 맛의 비결은 맛좋기로 유명한 강화 쌀과 우물물이다. 양조장이 있는 온수리(溫水里)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일대 지하수를 약수천(藥水川)이라고 불렀는데 피부병에도 효험이 있어 예전부터 사람들이 온천을 즐겼다고 한다.

금풍양조장 안에는 90년이 넘은 우물이 있다. 폭은 3m, 깊이는 10m가 넘는다. 금풍양조 막걸리는 이 우물물로 만들어진다. 물은 예전처럼 바로 사용하지 않고 필터로 정화해 사용한다. 물이 좋으면 술맛도 좋은 법. 향이 좋은 금풍양조 막걸리(6.9도)는 탄산이 없다. 감미료를 넣지 않아 담백하고 부드러워 목 넘김이 좋다.

"찾아오시는 분마다 90년의 세월, 3대째 이어오는 전통을 얘기하세요. 물론, 그 얘기도 중요하고 소중히 기억해야겠지요. 이제는 오래된 건축물과 막걸리가 만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양 대표는 "양조장의 역사보다 양조장 미래를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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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석 금풍양조 대표의 할아버지 때 사용했던 우물터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양 대표가 양조장을 다시 열면서 내세운 원칙은 3무(無)다. 무농약(100% 강화도 친환경 쌀), 무감미료(수제 프리미엄 막걸리), 쓰레기 없는 제로 웨이스트(쌀포대 업사이클링)다. 금풍양조장에서 제공하는 포장재는 강화 쌀로 막걸리를 빚는다는 점에 착안해 쌀포대로 보냉팩을 만들었다.

내년에는 쌀포대에 콩기름을 발라 여름에 차가운 막걸리를 담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들려고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다. 두 병을 담을 수 있는 파우치는 커피 원두를 담았던 알루미늄 재질의 팩을 사용한다.

양 대표는 "강화 내 10여 개의 카페에서 원두팩을 받아 파우치로 사용하고, 막걸리를 구입하는 손님들에게는 카페를 소개해주고 있다"고 했다.

지역생산 쌀·우물 사용 '특산주 면허'… 무농약·무감미료·제로 웨이스트 '3無 원칙'
양조장서 공연·사진전 등 문화 이벤트도… 정부 '올해의 로컬크리에이터' 선정


금풍양조장에서는 컬래버 형식의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의 '싱투게더 시즌2' 1회 공연(7월6일 방영) 분을 금풍양조장 2층에서 촬영했다.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매장이나 야외에서 미니 콘서트를 열어 감동과 위로를 선사하는 음악 프로그램인 싱투게더 시즌2는 그룹 god 멤버인 김태우와 가수 KCM이 사회를 맡고 있다. 이날 초청 가수로는 헤이즈와 김필이 출연했다.

'책, 술, 꿀'은 강화에 있는 책방인 '국자와 주걱', 양봉을 하는 '큰나무카페'와 금풍양조장이 함께 기획한 이벤트다. 환경을 생각하는 책을 소개하고, 친환경 꿀과 친환경 막걸리를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백년가약, 백년해로 결혼 사진전'은 10년 뒤를 내다본 프로젝트다. 결혼사진을 양조장으로 보내주는 신혼부부에게 선물로 막걸리를 보내주는데 이렇게 모여진 결혼사진을 모아 얼마 전 전시회를 열었다. 금풍양조장 설립 100주년을 맞는 2030년에는 1천쌍의 결혼사진을 전시하는 기념행사를 열 계획이다.

금풍양조장
금풍양조장 생산실에서 막걸리가 익어가고 있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다양한 프로젝트와 영업방식을 인정받은 양태석 대표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주최하고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관한 2021 올해의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됐다.

지난 9월에는 양 대표와 인천 중구 개항로팀이 공동으로 강화섬 쌀 막걸리 만들기와 강화 사자발약쑥전 시식을 체험관광 패키지로 구성한 <酒 인천상륙작'전'>으로 인천관광공사가 주최한 '2021 미식 관광상품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양 대표는 "상표에 100년 양조장, 친환경 쌀 막걸리를 왜 안 넣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많은 걸 넣는 것보다 빼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상표와 컬러로 가치를 지켜내고 싶다"고 말하는 양 대표는 "비교 대상이 없는 금풍양조장만의 막걸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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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풍양조 막걸리는 마트나 음식점 등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매장 진열장에 쌓인 여러 막걸리 중 하나로 남고 싶지 않아서다. 양 대표가 일반 주류제조면허가 아닌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 주류제조와는 면허를 받는 방식과 절차가 다르다. 지역특산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만으로 만든 술을 말한다. 지역특산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세법상 술은 대면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주류의 통신판매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전통주(지역특산주) 제조면허를 취득한 자에게 한해 인터넷, 통신판매를 유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양 대표는 한국식품연구원 김재호 박사에게 양조장 국실(누룩이나 메주 또는 고지를 띄우는 방)에 있는 곰팡이로 상품화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100년 된 곰팡이를 양산해 막걸리의 깊은 맛을 내겠다고 했다.

90년 전통, 재미, 상생, 문화, 책, 사진, 컬래버 문화 이벤트 등은 지금의 금풍양조장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양 대표가 재미와 즐거움만 생각했다면 금풍양조장이 짧은 기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전통을 지켜 맛을 내려는 열정과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금풍양조장이 예전 명성을 되찾아 또다시 온수리의 랜드마크가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진호기자 provinc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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