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국 화백 부인
고여 우문국 화백의 부인 최분순 여사가 조선민족청년단 간부 활동 시절의 사진첩을 펼치고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2021.12.20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우리는 한줄기 단군의 피다. 죽어도 또 죽어도 겨레요 나라. 내뻗치는 정성 앞에 거칠 것 없다." -족청 '단가'의 한구절

지난 19일 인천 남동구 자택에서 만난 1930년생 최분순 여사가 또렷이 부른 조선민족청년단 '단가'의 한 구절이다. 최 여사는 초대 인천문화원장이자 인천 예술계를 이끌었던 고여 우문국(1917~1998) 화백의 부인이다. 그는 10대 시절 '족청'이란 약칭으로 더 유명한 조선민족청년단의 여성 간부로 인천에서 활동했다.

단원의 족청 노래 언론 첫 공개
10대시절 우익 청년단체 몸담아
1기 유일한 여성간부 인천 활동

 

최분순_여사가_75년만에_부르는_족청_단가.mp4 

올해 망백(望百)인 최 여사의 뇌리에서 75년이 지나도록 떠나질 않는 해방공간의 노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간 '개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희귀하고 가치 있는 기억이다. 당시 실제 단원의 입을 통해 족청 단가·훈련소가가 언론에서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족청은 한국광복군 참모장 출신이자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1900~1972)을 중심으로 1946년 10월 조직된 우익 청년단체다. 한때 단원만 100만명이 넘는 해방 이후 남한 최대 규모 조직이었으나, 1949년 1월 이승만(1875~1965) 중심의 대한청년단에 흡수·통합됐다.

우문국 화백 부인
조선민족청년단 단복을 입은 최분순 여사. /최분순씨 제공

최 여사는 언니의 권유로 응시한 족청 1기 간부후보생 시험에 합격해 경기도 수원 족청 간부훈련소(옛 일본육군병원 자리)에 입소했다. 인천에서 족청의 1기 여성 간부훈련생은 최 여사가 유일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족청은 1946년 12월 1기 간부훈련생 200명을 선발해 한 달 동안 훈련을 거친 후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도록 했다.

최 여사는 "민족청년단 인천시단 간부로 강화도, 교동도 등 강화군 13개 읍·면을 돌면서 단원을 규합했다"며 "내가 당시 말을 제일 잘해서 연설을 맡았는데, '(일제 강점기) 고통에서 해방됐으니 건국으로 완전한 독립을 위해 힘쓰자'고 외쳤다"고 말했다.

10대였던 최 여사 입장에선 1949년 족청의 해산이 매우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최 여사는 "인천시단 산하 구단, 그 아래 읍면동단으로 인천에 다 퍼졌는데 왜 이렇게 시시하게 떨어졌는지 몰랐다"고 했다.

 

1949년 갑작스런 해산에 '충격'
'백범 서울 경교장'서 심부름도
"2년여 단체 참여 행복했었다"


최 여사는 족청 해산 이후 백범 김구(1876~1949)가 있는 서울 경교장에서 심부름하며 지냈다. 백범이 경교장에서 나이가 어렸던 최 여사를 무척 귀여워했다고 한다. 최 여사는 백범의 장례식에서 상복을 입은 몇 안 되는 경교장 사람 중 하나였다. 족청 단원 출신들의 모임은 최근까지도 이어졌으나, 이젠 대부분 세상을 떴다.

최 여사는 충남 태안 안면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언니와 함께 세 모녀가 인천 동구 송림동 수도국산에서 어렵게 살았다.

현재 족청에 관한 여러 학술적·정치적 평가가 있지만, 최 여사는 개인적으로 훈련 기간을 포함해 2년 남짓 족청에서 사회활동에 참여했던 시절이 행복했다고 기억했다. 최 여사가 족청 '단가'와 '훈련소가'를 여전히 기억하며 부를 수 있는 원동력일 테다. 그땐 정치 이념이나 상황을 잘 몰랐다고 했다.

최 여사는 "왜정시대에 학교 다닐 때는 조선말을 쓰면 매를 맞았는데, 해방되고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애국심뿐이었다"며 "그땐 대한민국 일류 여성 혁명가가 되고 싶은 꿈을 꿨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터진 이듬해 12월 최 여사는 사회단체 활동 중 만난 우문국 화백과 인천 중구 중화루(옛 대불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관련기사 3면(해방공간 남한 최대 우익 청년조직… 제헌 국회의원 당선 '영향력')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최분순 여사가 부르는 족청 단가·훈련소가 동영상은 경인일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