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인천의 지도(地圖), 인천의 지도(知圖)

입력 2022-01-09 20:08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1-10 19면

이진호_-_데스크칼럼.jpg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
실화를 다룬 영화 '더 포스트'는 당시 미국의 중소 신문사였던 워싱턴 포스트가 미 정부의 베트남 전쟁 조작 사건을 보도하기까지의 긴박했던 상황을 담고 있다. 영화는 뉴욕타임스가 베트남 전쟁의 비밀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 일부 내용을 보도하면서 시작된다. 백악관은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법원에 보도금지를 요구하고 추가 보도 시 발행인을 비롯한 해당 언론인을 구속하겠다며 압박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4천여 장에 달하는 정부기밀문서를 확보하고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에게 베트남 전쟁 조작 사건을 보도하자고 한다. 아버지가 물려준 신문사였지만 관여하지 않다가 남편의 죽음으로 발행인을 맡게 된 캐서린은 재정난을 겪고 있던 신문사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 보도로 인해 불법이 인정되면 투자를 받지 못해 신문사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보도를 요구하는 편집장과 이를 만류하는 이사진에 둘러싸인 캐서린이 결정을 내리는 장면이다. 늦은 밤 캐서린은 'Run it(윤전기 돌려)'이라고 말한 뒤 "이제 자러 가야겠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침실로 향한다. 백악관의 고소로 대법원 법정에 선 캐서린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정당했다(언론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대중이다)는 판결을 받는다.

사태가 진정되고 캐서린은 윤전기 앞에서 편집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뉴스는 역사의 초고라고 했어요. 항상 옳을 수도 없고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 쓰는 거죠." 워싱턴 포스트는 베트남 전쟁 보도 이후 37대 미국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연이어 보도한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라고… 계속 쓰는 것'
20년 기획보도 9권 정리 '인천이야기 전집'


초고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정해야 하는 글이다. 기자 초년시절부터 선배들로부터 "(기사를) 쓰는 것을 두려워하되, 쓰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현재의 독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미래의 독자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는 게 '기록하는 놈(記者)'의 사명이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초고를 쓰다 보면 버리는 글이 많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열 문장의 글이 가차 없이 사라진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못한 오류투성이의 글, 앞뒤 맥락과 맞지 않는 글,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글들이다. 그렇게 빼고, 버리는 글 중에 아깝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 아주 작은 흠이라도 있으면 미련없이 도자기를 깨버리는 도공의 심정과 비슷하다.



좋은 사진과 그림, 글의 공통점은 많이 담는 것보다 많이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명료하게 써야 한다(기자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초고에서 시작해 마감하기까지 많은 글이 베어져 나간다. 처음 썼던 것과 전혀 다른 글이 되기도 한다. 기사는 선배들의 조언과 지도를 통해 부족했던 것들이 채워지면서 풍성해진다. 때로는 후배의 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기자들 신문과 책 '사회의 접착제'로 만든
지역 길라잡이 이자 알아가는 알림이 역할


'격동 한 세기 인천이야기' 출간 20주년을 맞아 인천이야기 시리즈 아홉 권의 책을 하나로 모은 '인천이야기 전집'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인천과 연관된 주제를 정해 1년 동안 매주 한 번씩 연중기획 기사로 보도한 뒤 이를 다시 정리해 단행본으로 냈다. 20년 동안 아홉 권이 만들어졌다. 이 아홉 권의 책을 1년여 동안 수정하고 새로운 사실을 보완했다. 20여 년 동안 기자들이 기본적인 취재 업무를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취재하고 밤을 새워 기사를 쓰고, 격한 토론을 거쳐 힘겹게 만들어진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한 권 한 권이 소중하다.

도시 인류 문명사를 다룬 '메트로폴리스'를 쓴 영국 작가 벤 윌슨은 "도시들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통해 흔히 역사를 묻거나 없애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문과 책을 '도시 사회의 접착제'라고 강조했다. '인천이야기 전집'은 역사가들이 펴낸 정사(正史)가 아니다. 그렇다고 민간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야사(野史)도 아니다. '인천이야기 전집'은 20년 동안 기자들이 발로 뛰면서 신문과 책이라는 '사회의 접착제'로 만든 찾아가는 '지도(地圖)'이자 인천을 알아가는 '지도(知圖)'다.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



경인일보 포토

이진호기자

province@kyeongin.com

이진호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