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그토록 사랑했던 대한민국의 하늘에서
부디 편하게 잠드시게"
지난 12일 공군 KF-5E 전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전투조종사 고(故) 심정민 소령(31)에 대한 영결식이 14일 수원에 있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 필승체육관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엔 순직 조종사의 유족과 박인호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지휘부와 장병,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서욱 국방부장관,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하태경 국민의 힘 국회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참석해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조사 및 추도사 낭독·종교의식·헌화 및 분향·조총 및 묵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故 심 소령은 1993년 2월 대구에서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2012년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2016년 3월 학생조종사를 시작으로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F-5를 주 기종으로 500여시간의 비행시간을 기록한 최고기량 조종사다. 그는 호국훈련에서 그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아 작전사령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결혼 1년 차의 신혼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의 참 군인의 자세를 보여준 심 소령에게
지휘관이기 이전에 전투조종사의 한 명으로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박대준 10전투비행단장은 "심정민 소령은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키다 불의의 사고에도 눈앞에 보인 민가에 비상탈출도 마다하고 민가 회피 기동을 하며 조종간을 놓지 않고, 끝내 아끼고 사랑하는 전투기와 함께 무사귀환이란 마지막 임무를 남긴 채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호국의 별이 됐다"며 "마지막까지 빨간 마후라의 정신을 지킨 의로운 조종사이자, 대한민국의 참 군인의 자세를 보여준 심 소령에게 지휘관이기 이전에 전투조종사의 한 명으로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고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순직한 심 소령의 동기생 회장인 김상래(29) 대위는 "2012년 1월13일 성무대에서 처음 만나 멋진 조종사가 되겠다며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던 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됐다"며 "끝까지 조종간m을 놓지 않았던 너처럼 언제나 재치있는 입담과 호탕한 웃음소리로 우리를 웃게 했던 너를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조의를 표했다.
고인이 속한 201비행대대 동기인 이지수(29) 대위는 "언제나 전투비행대대에서 전투조종사로 남고 싶다는 꿈을 말했던 심 소령이었기에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고 민가를 피한다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한다"며 "심 소령을 끝까지 전투조종사로 기억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헌화식 도중엔 깊은 침묵이 자리 잡았다. 고인의 어머니는 "정민아, 내 정민아"라며 흐느꼈고, 고인의 아내는 3명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단상에 오를 수 있었다.
유가족 대표로 단상에 선 고인의 외삼촌은 "조카는 12명의 병역명문가에서 태어나 공군 엘리트코스라 불리는 조종사로 근무하는 걸 큰 자랑으로 삼아왔다"며 "다시는 이런 허망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사후대책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운구 도중엔 흐느낌과 동시에 노후 비행기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한 유족은 "제발 낡은 기종 좀 바꿔 달라. 이게 뭐냐. 그 우수한 조종사를…"이라고 성토했다.
정치권에서도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김진표 의원 "화옹지구로의 민군통합 국제공항 건설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
"민가 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은 심 소령의 숭고한 희생에 수원 지역 국회의원을 대표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발언을 시작한 김진표 국회의원은 "이번에 추락한 기종은 30년이 넘은 모델로 수원 10전투비행단에서는 전국에서 제일 많은 40여 대나 보유하고 있다"며 "2000년 이후 12대나 추락한 상황에 언제까지 이런 희생을 지켜봐야 하나. 도심 한복판에 있는 군 공항이 얼마나 위험한지 지역 주민들도 실감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바닷가이자 예비이전후보지로 국방부가 지정한 화성 화옹지구로의 민군통합 국제공항 건설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하루빨리 국방부와 지역정치인들이 나서서 안전한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11일 오후 1시45분께 심 소령은 KF-5E 전투기를 타고 수원 기지에서 이륙하던 중 기지에서 8㎞ 가량 떨어진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의 한 야산에 추락하면서 순직했다. 공군의 조사에 따르면 해당 전투기는 이륙 후 상승하던 중 좌우 엔진화재경고등이 켜졌고, 이에 심 소령은 상황을 알리고 긴급착륙하기 위해 기지로 선회하던 중 조종 계통 결함이 추가로 발생하면서 전투기 기수가 급강하했다. 심 소령은 당시 'Ejection(비상탈출)' 콜을 2번가량 했다. 하지만 항공기 진행 방향에 다수의 민가가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해 비상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조종간을 끝까지 잡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투기는 민가에서 불과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추락했다.
공군은 기체 결함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고인은 이날 오후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
/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