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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은경 칼럼니스트
8년 전 지금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로 이사 와서 가장 좋았던 건 창밖으로 날아다니는 새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서울인데도 아파트 뒤쪽에 산이 있어 새가 많았다. 특히 비둘기가 많았는데 아파트 쪽으로 놀러와 옥상에 앉았다가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는 걸 보면 비상을 즐기는 듯해 일순 부러움을 느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비둘기가 골칫거리가 되는 사건이 생겼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2층이고 베란다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해 놨는데 이곳에 비둘기가 모이기 시작하더니 배설물이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실외기 뒤편에 둥지를 틀기 위함이란다. 실외기 뒤에 비둘기가 둥지를 튼 사진을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린 관찰할 때 일부만 보는데 익숙
대선후보들 많은 공약 쏟아내지만


내버려 두면 비둘기의 배설물로 악취가 나고 비위생적인 것도 문제지만, 낙엽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만들어진 비둘기 둥지로 인해 실외기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 위험하단다. 다양한 지역에 서식하는 집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2009년)된 건 어렴풋이 기억해 낼 수 있었으나 이런 위험성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성가신 비둘기를 해결하기 위해 '비둘기 퇴치업체'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비둘기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결국 난 비둘기 둥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서둘러 퇴치업체에 맡겨 그곳에 그물망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비둘기가 천덕꾸러기 신세인 줄 모르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를 부러워했던 나는 새의 한 면만 보았던 셈이다.

비둘기 얘기를 하고 나니 지인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한 지인이 자기 동네에 박 여사로 불리는 사람이 있는데 부럽다며 말하기 시작했다. 박 여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들이 둘이나 있고 두 아들이 효심이 있는지 생활비를 넉넉히 보내 줘서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며 산단다. 그렇게 말하는 지인에게 "박 여사와 똑같은 인생을 살고 싶은가요?"하고 누군가가 물어보니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박 여사처럼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도 좋다고요?"라고 또 다른 이가 묻자 그건 아니라고 답한다. 박 여사는 지금은 60이 넘어 한가롭게 살고 있으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어 자식들을 키우는 동안 여러 가지 장사를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반면에 그녀는 결혼한 뒤 쭉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비교하면 박 여사가 본인보다 더 고생하며 살았던 거라고. 내가 굳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타인의 인생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옳지 못한 시각이라고 여겨서다.

유권자가 중요 분야만 관심두거나
정당지지도 따라 투표한다면 잘못
자질이나 도덕성 안중에 없을 우려


일부만 보는 현상은 직업선택에서도 나타난다. 청소년들 중에는 화려한 겉모습만을 보고 연예인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연예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한 예로 2020년에 신인 배우를 뽑는 BH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에는 1천600여명이 지원했고 최종 합격자는 겨우 3명이었다고 한다. 10년 가까이 무명 시절을 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연예인들도 있고, 한때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몇 년 뒤 무대에서 사라진 아이돌 그룹도 많다. 이런 점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무엇을 볼 때 대체로 일부만을 보는 데 익숙하다. 그 결과 판단의 실수를 하기 쉽다. 이는 선거에도 작용할 듯싶다. 오는 3월9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대선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공약을 많이 내놓는데 유권자마다 관심을 끄는 공약이 다를 것이다. 또 정당 지지도도 다를 것이다. 만약 유권자가 자신이 중요시하는 공약에만 주목해 투표하거나 정당 지지도에 따라서만 투표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되면 후보들 중 한 나라를 이끌어 갈 재목으로 자질이나 도덕성 면에서 누가 가장 나은가 하는 것은 안중에 없을 테니까.

무엇을 알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해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선 안 되고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볼 때 지혜로우려면 이제껏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하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주목하지 않은 것에 주목할 때 참모습을 제대로 보는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은경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