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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자는 '헌법 주의'를 신봉하는 '특수통' 수사검사 출신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진학했지만, 사법고시 9수를 통해 검사에 임용, 26년간 검찰에서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개인적으로는 정 많은 '터프가이'로, 검찰 내에서는 정의파 검사 출신으로 유명하다.

여러 정권에서 부침을 겪었지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권력에 총구를 겨누면서 임기제 총장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불의에 침묵하지 않은 게 원인이 돼 야권의 대선 후보로 '정권교체'의 주인공이 됐다.
출생과 학창시절
=윤 당선자는 1960년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연세대 응용통계학과의 설립 멤버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이며, 모친은 이화여대에서 근무하다 결혼 후 퇴직했다고 한다.

친가의 고향은 충남 논산 노성면으로 '충청의 아들'로 불리고 있으나 외가는 강원도 강릉이다. 선거 때 '강원의 외손'이라며 친근감을 보이기도 했다.

1979년 충암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에 대해 교내에서 모의재판을 열고 검사역을 맡아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 모의재판 이야기가 교내외로 퍼지면서 한동안 강원도로 피신했으며,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제23기.

[윤석열 당선] 윤석열의 초등학교 시절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자가 초등학생 시절 김포공항에서 출장을 앞둔 아버지와 함께 사진촬영한 모습. /국민의힘 선대위 제공

사시 9수는 '인생 캐릭터'
=사람과 술을 좋아하다 보니 사법고시(연수원 23기) 9수라는 딱지가 붙어 그의 '인생 캐릭터'가 됐다.

고시원 생활 때는 오지랖(?)이 넓어 나이 어린 후배들을 몰고 다니며 연극구경도 자주 하고 사회에 먼저 나온 선배로서 삶에 대한 고뇌와 철학적 가치를 설파하는 자상한 형이었고, 오빠였다.

당시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친구 동생 선·후배들의 관혼상제는 다 챙겨주는 '맏형'이었다. 오죽했으면 '석열이 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중앙지검 검사장 시절 윤 총장이 중앙지검 간부들, 운전기사, 수행비서 등과 함께 순댓국을 먹는 모습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결혼하고 자식은 없지만, 반려동물 7마리도 키우고 있다. 유기견 보호단체 회원이기도 하다.

[윤석열 당선] 윤석열의 어린 시절
만 2세 때 강릉해수욕장을 찾은 모습. /국민의힘 선대위 제공

검사 시절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검찰에서 잔뼈가 굵었다. 특수통으로 검찰에서 재직하다 2002년에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1년간 재직했다가, 적성에 안 맞아 결국 경력직 채용 형식으로 검찰에 복직했다.

그가 검찰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3년 참여정부의 측근 인사인 안희정, 강금원을 구속수사하면서 부터이며 2006년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으로 있으며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맡았다.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면담을 신청하고, 수사결과 정몽구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사직서를 내밀었다. 이에 정 검찰총장은 고심 끝에 정몽구 회장을 구속하기로 하는 데 정 검찰총장은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결혼 때 주례를 섰다.

BBK 특검에 참여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맡았고,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과 동시에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에 임명,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을 하는 등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수준으로 적극적으로 수사했다.

[윤석열 당선] 윤석열의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4학년 재학 당시 소풍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국민의힘 선대위 제공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에서 검찰총장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박영수 특별검사로부터 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지명됐다. 본인은 자신이 이 정권에 처음으로 상처를 냈기 때문에 또 상처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며 고사했지만 박영수 특검이 직접 나서서 합류를 종용해 합류했다.

그의 수사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이 됐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임명됐지만, 검찰 내 파워 순위를 볼 때 5단계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본인이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직후에 터진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고, 이 때문에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 의한 검찰총장 정직 사건까지 겪으며 문재인 정부 및 더불어민주당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게 됐다.

결국 2021년 3월 5일 검찰총장에서 사퇴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해 자신의 대선 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하고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윤석열 당선] 윤석열의 대학 시절
대학교 4학년 재학 중 촬영한 사진. /국민의힘 선대위 제공

요리 잘하는 미식가
= 윤석열 당선자는 거구이지만 요리를 잘하고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의 미식가다. 지난해 9월 집사부일체에서 수준급의 요리 실력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개인기는 별로 없으나 사람들과 퍼져 앉아 술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작심하고 마실 때는 남보다 빠르게 많이 먹는 '두주불사형'이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낭만파이지만 노래는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잘못하는 성격이다.

불의와 권력에 맞서왔지만, 약자와 억울한 사람에 대해서는 '인간애'를 보이는 순수파다.

[윤석열 당선] 윤석열의 사법연수원 입학전 모습
사법연수원 입학전 사진. /국민의힘 선대위 제공

인생 반전
=그의 인생에 '반전'을 맞은 것은 정치였다. 부인 김건희 여사도 "우리가 정치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조국사태가 남편을 불러낸 것"이라는 전화 녹취록이 공개된 바 있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 미래를 만드는 대통령'은 그의 대선 슬로건이었다.

권력과 싸우면서 얻은 정치 '내공'은 청와대 기능 폐지부터 시작했다.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기능을 바꾸지 않고는 정치교체는 요원한 것으로 본듯하다. 유세장에서 매번 "부패 카르텔을 깨겠다"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것도 대한민국 대개조의 몸부림이다.

/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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