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 중국학술우너 시민강좌1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가 지난 25일 진행된 '2022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지역인문학센터 시민강좌'에서 비대면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2.3.25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지역인문학센터 제공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화도진도서관, 구산동도서관마을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경인일보 등이 후원하는 '2022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지역인문학센터 시민강좌'가 '미각을 자극하는 중국요리의 문화사'라는 대주제로 지난 25일 시작됐다.

첫 강좌를 맡은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는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비대면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에 대해 강연했다. 이번 시민강좌는 다음 달 22일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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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음식은 역사다. 일상의 식습관과 생활방식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민속이 복합적으로 얽혀 사람들의 입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기에 음식을 보면 나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우리 밥상의 김치처럼 중국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게 돼지고기다.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은 세계 돼지고기의 56%를 소비한다. 많이 먹는 만큼 돼지고기 요리도 발달해 종류가 1천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귀족들은 거들떠보지 않던 음식
빈농 출신이었던 명 태조 주원장
황제 오르자 처음으로 식탁 올라


중국인들은 언제부터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을까. 돼지 사육은 오래됐으나 황제나 귀족, 부자들은 돼지고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1세기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에서 옛날 돼지고기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소동파는 '돼지고기 예찬'이라는 시에서 진흙만큼 값싼 돼지고기, 부자는 먹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줄 모른다고 읊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돼지고기는 가난한 농민과 서민, 그리고 하층민들이 주로 먹는 고기였다.

돼지고기는 명나라 때 신분이 급상승하며 황제의 식탁에 올랐다. 명 태조 주원장이 황제가 된 지 17년째 되는 1384년 6월 어느 날 아침, 수라상에 양고기 볶음과 거위 부추 지짐, 닭고기탕, 콩국 등과 함께 돼지고기 채소볶음, 돼지족발찜이 차려졌다. 궁궐 주방 관리관청의 기록인 '남경광록시지(南京光祿寺志)'에 나오는 메뉴다.

황제의 음식에 돼지고기가 나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중국의 음식 사학자들은 황제의 식탁에 돼지고기가 오른 이유를 주원장의 출신 성분에서 찾는다. 하층계급인 안후이의 한족으로 빈농 출신이기 때문에 당시 서민 음식인 돼지고기에 익숙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명나라에서는 심지어 돼지를 돼지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황제의 성인 주(朱)씨와 돼지 저(猪)의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서민 음식 익숙했을 것이란 추측
돼지고기 널리 퍼진건 청나라 때


돼지고기가 널리 퍼진 것은 청나라 때다. 청의 지배층은 여진족인 만주족으로 울창한 산림이 생활 근거지여서 돼지고기를 주로 먹었다. 돼지 토템 신앙이 있을 정도로 돼지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청 황실의 제례 절차 기록인 '흠정만주제신제천전례(欽定滿洲祭神祭天典禮)'에는 새해 하늘과 조상께 제사를 지낼 때나 중요 의식에서는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와 순대로 음복한다고 나온다. 이렇듯 지배층인 만주족과 돼지고기를 좋아한 한족의 식성이 겹치면서 중국에 돼지고기가 널리 퍼졌다.

간단하게 알아본 중국의 돼지고기 역사이지만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국은 한족 중심의 5천년 역사와 중화주의를 강조하지만 한족이 중심이었던 시대는 길지 않다. 진시황 이후 지금까지 한(漢)과 명(明)을 제외하면 대부분 북방(유목)민족의 지배와 영향을 받았다.

/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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