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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 어부' 이정섭씨가 평택호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다. 2022.4.5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고기가) 없어, 올해는 없어도 너무 없네."

지난달 29일 오후, 이씨의 배를 타고 함께 평택호로 나갔다. '청용호'라고 적힌 작은 배가 평택호 물살을 가로 질렀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강물 위에 떠 있는 하얀색 플라스틱 통에 가까워졌다. 어망이 설치된 수역이다.

이씨가 그물을 천천히 끌어올렸지만, 그물은 텅 비어 있었다. "고기가 안 나오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최근 평택호를 점령한 무용생물 '강준치'도 골치다. 배스와 블루길은 이미 토착화됐는데, 여기에 강준치까지 늘어나면서 고유 어종의 알을 다 잡아먹고 있다. "그물 꺼내면 강준치 같은 외래종이 절반이야, 얘네들이 붕어 새끼를 다 잡아먹으니까 고기들이 계속 줄어들지."

한 번 강에 나가면 기본 3시간 조업을 하고 돌아오는데, 이날은 오전에 고기가 없어 오후에 또 한 번 나왔다. 또 다른 수역으로 이동하자, 수많은 작은 고기 속에서 값을 받을 만한 큰 고기가 나왔다.

이렇게 잡은 고기들은 이제 음식점이 아닌, 대부분 낚시터로 간다. "민물 고기 파는 가게들이 많이 사라져서 지금은 대부분 낚시터에서 가져가지."

이씨는 평택호 어부 중 나이가 가장 많지만, 여전히 고기를 많이 잡는 어부 중 하나다. 40년간 쌓은 경험 덕이다. "평택호에서 평생이야. 아산만 전체를 다 알아.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고기의 흐름은 어떤지 손바닥 안이야." 그는 민물어업을 공부했으면 박사까지 땄다며 자부심도 드러냈다.

외래종 '강준치' 점령 토종 씨 말려
평택호, 한때 100여명서 현재 4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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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 어부' 이정섭 씨가 아내와 함께 평택호에서 수확한 물고기를 분류하고 있다. 그물만 쳤다 하면 만선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날 수확한 물고기양은 한 상자에 불과했다.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비록 이날은 만선(滿船)을 이루지 못해 한숨을 쉬면서도 이씨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고기가 안 나와도 그렇게 속상하지 않아. 날 따뜻해지면 나오겠지, 내일은 더 잡히겠지 하면서 일하는 거지." 무엇보다 이씨는 8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이 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데 감사해 했다.

"딸들이 맨날 '아빠 그만해' 그러지. 근데 내가 할 수 있잖아. 젊었을 때도 그렇고 힘 닿는 데까지 하는 거지. 이제는 자식보다 나를 위해 하는 거야. 지금 내가 노가다(일용직) 하겠다고 해봐 누가 써주겠어. 배는 나이가 들어도 탈 수 있잖아."

이씨와 평생을 일했던 어부들은 둘 중 하나다. 떠나거나, 함께 나이가 들어가거나. 한창 내수면 어업이 활성화했을 때만 해도 평택호 어부는 10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41명이 전부다. 이 중에서도 이씨처럼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전업으로 배를 타는 어부는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

평택호뿐만 아니라, 경기도 내수면 어가·어부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도내 어가·어부 수는 1980년 3천363명(어가 617가구)에서 지난 2020년 1천144명(어가 415가구)까지 줄었다. → 그래프 참조

어릴 적부터 늘상 오가던 평택호에 대한 애정도 이씨를 붙잡고 있다. 이씨를 비롯해 평택호가 삶의 터전인 '평택호 어업계'가 자발적으로 평택호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평택호가 우리를 먹여 살렸는데, 비가 많이 내리면 쓰레기가 엄청나. 그걸 볼 때마다 여기도 언젠가 고갈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어차피 배 타고 나가는데 쓰레기라도 줍자 했지."

'평생 터전' 애정에 그물 던지지만
"고기도 없고 하려는 사람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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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지금을 생각하지 말고 다음 세대, 후대에 여기서 일할 어부들을 생각해서 쓰레기를 줍는다. "내가 나이가 들어 지금 고기 잡는 수역에서 빠지면 그 자리에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겠어. 그때까지 쓰레기 주우며 평택호를 지켜야지."

평택호는 이씨의 삶 전부가 담겨있다. 물이 불어 위험하지만 않으면 항상 이씨는 평택호에 배를 띄웠다. 힘닿는 데까지 고기를 잡으며 살겠다는 게 이씨의 꿈이지만, 아무리 애정이 담긴 일이라도 자식들한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자식들한테 물려 주겠어. 그렇다고 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나야 가난할 때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이 일을 했지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아. 할 사람도 없고 하려는 사람도 없고. 그동안 해온 나나 부지런히 하는 거지."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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