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합시다] 40년 가까이 그물 던진 '천직'… 지금은 '천형'같을 때도

민물어부의 꿈

경인일보 통큰기획 '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가 4월 6일부터 연재중이다. /경인일보DB

Mnet의 '쇼미더머니 10'에 래퍼 베이식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2015년 쇼미 4의 우승자였던 그는 2021년 쇼미 10의 도전자였습니다. 세미파이널 문턱에서 베이식은 릴러말즈와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를 공연곡으로 내놓습니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눈빛에 베일 듯 우린 날카로워. 마침표를 찍고 난 조금 더 멀리 가려 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언뜻 보기에 사랑하는 연인과의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곡은 '꿈'에 대한 얘기입니다. 만남은 꿈과의 만남이고 이별은 꿈을 포기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아직도 기억나 차 안의 공기가.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짜릿했던 뭔가가.' 처음 랩을 접했던 6살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싸비'(후렴)를 거쳐 꿈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제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은 잠깐이었지. 그렇게 어렵게 놓아줬었는데 쉽게 다시 왔다 멀어지는 건. 내 의지완 달라 멀어지는 걸 인정하기는 죽기보다 싫어.'



흔히 장래희망이라고 말하곤 하는 꿈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수시로 바뀝니다. 짜릿하게 다가와 운명처럼 느꼈던 꿈은 쉽게 다시 왔다 멀어지기도 하고, 내 의지와 달리 멀어지기도 합니다.

자기와 꼭 맞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천직'(天職)이라는 말을 붙이곤 합니다. 하늘이 내린 듯 찰떡궁합인 꿈을 가지고 살던 사람에게도 이 천직이 '천형'(天刑)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평택호서 잡은 물고기로 '생계'
환경오염에 수산자원 줄어들어
'겸업 어부' 절반·50대이상 70%


여러분은 '민물 어부' 혹은 '내수면 어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내수면이란 바다가 아닌 수면을 이르는 말인데 '안 내'(內)라는 한자에서 보듯 내륙에 위치한 물에서 어업 활동을 하는 어부를 말합니다.

이들은 호수나 하천과 같이 짠 기가 없는 물에서 어업 활동을 합니다. 민물 어부라는 말이 낯선 것은 그만큼 직업을 가진 사람의 숫자가 적기 때문일 겁니다. 내수면 어업 활동을 하는 민물 어부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먼 옛날 민물 어부가 각광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평택호 어부 이정섭(78)씨는 1979년 뱃사공으로 시작해 1982년 민물 어부가 됐습니다. "그 사람들(민물 어부들)이 이거 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때 시작했지."

그물값이 비싸 한 사람당 3~4개밖에 못 쳤고 기술 하나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들었는데 물고기는 잘 잡혔다고 합니다. 지금과 달리 수산자원이 풍부한 시절이라 그물만 쳤다 하면 만선(滿船)이었다고 하죠.

40년 동안 민물어부로 일해 온 그는 평택호에서 잡은 물고기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정말 부지런히 했지.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태우고, 애들 가르치려고. 평택호에서 잡은 고기로 자식도 키우고 생활을 했어."

또 다른 평택호 어부 김영수(67)씨도 40년 가까이 그물을 던져온 사람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발전하며 환경이 오염되자 수산 자원이 자연히 줄어들었습니다. 김씨는 2002년부터 화물차 운전기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새벽 3~4시에 나와 5시간 가량 어업 활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운전을 합니다.

김씨는 "수산자원이 줄면서 전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쉽지 않아. 나 말고도 농사 짓거나 이런 어민들 많지. 옛날에는 고기 잡아 애들 대학, 유학 다 보냈는데 지금은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수준이야."라고 전했습니다.

전국 민물 어부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겸업 어부'입니다. 여기에 민물 어부의 70%가 50대 이상입니다. 이 말은 민물 어부가 소멸하는 직업에 속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을 땐 100명에 달했던 평택호 어부도 지금은 41명 만이 남았습니다. 소멸 직업인 민물 어부들은 왜 이 꿈을 택하게 됐을까요.

내수면 쓰레기 자발적으로 수거
외래어종 호수 점령 '위기 가중'
지금도 새벽 호수 청소·그물질


기사를 조금 더 읽어보겠습니다. 평택호 어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씨지만 여전히 고기를 가장 많이 잡는 사람은 그입니다.

"평택호에서 평생이야. 아산만 전체를 다 알아.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고기의 흐름은 어떤지 손바닥 안이야. 딸들이 맨날 '아빠 그만해' 그러지. 근데 내가 할 수 있잖아. 젊었을 때도 그렇고 힘 닿는 데까지 하는 거지. 이제는 자식보다 나를 위해 하는 거야. 지금 내가 노가다(일용직) 하겠다고 해봐 누가 써주겠어. 배는 나이가 들어도 탈 수 있잖아."

민물 어부들은 내수면에 흘러온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수거합니다. 분기별로 수거하는 양이 5t~10t까지 된다고 합니다. 문명사회의 발전은 쓰레기를 다량으로 생산해 냈고, 이러한 환경오염은 물고기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외래 어종이 호수를 점령하면서 내수면 어업의 위기는 가중됐습니다.

이처럼 환경이 나빠졌는데도 내수면 어부들은 호수를 탓하지 않습니다. 제 손으로 호수를 청소하고 지금도 새벽 일찍 그곳에 그물을 던집니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나오는 곳. 민물 어부에게 내수면은 정직한 일터입니다.

'천직'이라고 여겼던 꿈은 때때로 벗어날 수 없고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천형'처럼 느껴집니다. 매일 그물을 던지는 행위는 숭고한 꿈인 동시에 끝나지 않는 노동이기도 합니다.

다시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입니다.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이어집니다. '준비는 예전부터 했는지도 몰라. 이제는 생긴 거 같아 마침표를 찍을 용기가. 끝나도 괜찮아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다음 페이지에 끝나도 좋아 그러나 거기에 너가 있다면. 이 얘기의 끝을 미룰 거야 그게 내가 원하던 결말. 아직도 어려워 이미 해봤던 이별이라도.'

우리는 꿈과 만나고 또 꿈과 헤어집니다. 한 번 이별했던 꿈과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꿈을 포기하려다가도 너(꿈)가 있다면 끝을 미루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꿈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했던 장래희망 중 아마도 민물 어부는 없을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민물어부도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만선을 이룰 수 없는 혹독한 환경이 와도 자신이 택한 꿈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저 잔잔한 수면 위로 묵묵히 그물을 던질 뿐입니다.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며 꿈을 포기하려 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읊조릴 수 있습니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그대(꿈)가 날 떠나간단 말만 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 서 있을게요."

'경기도에 민물 어부가 산다' 기사는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반평생 혹은 한평생을 수면 위에 바친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꿈을 만날 용기를 얻습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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