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동구 수산동에서 남동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배정봉씨가 수령 50년이 넘은 배나무 사이로 구월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2022.4.1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50년 넘게 한 일인데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 큽니다."
인천 남동구 수산동에서 5만여㎡ 규모의 '남동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배정봉(79)씨는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배나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과수원 부지가 정부의 '인천 구월2 신규택지' 지구에 포함되면서 농사를 계속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배씨는 1970년부터 이곳에서 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수산동 일대에는 과수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는 게 배씨의 설명이다. 그는 이곳에 배나무를 가져와 2천여 그루의 나무를 가꿔왔다. 그 사이 주변에는 배 과수원이 많이 생겼고, '남동배'라는 브랜드까지 만들어졌다.
지난해 8월 정부는 구월동·남촌동·수산동을 비롯해 연수구 선학동, 미추홀구 관교동·문학동 일대 그린벨트 220만㎡ 부지에 1만8천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신규 택지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50년 넘게 일궈온 과수원을 잃게 된 것이다.
구월2지구 주민보상 대책위원회 이기복 위원장은 "정부가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이곳 주민들은 아무런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2.4.1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수산동서 5만㎡ 2천여그루 키워
50년 넘게 일궈 '남동배' 브랜드도
택지지구 포함돼 송두리째 흔들
배씨는 지난해 개발 소식을 듣자마자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 강화도 등 다른 지역의 농지를 알아봤다. 하지만 임차농인 배씨가 받을 수 있는 농업손실보상금이 적어 지금 규모로 과수원을 운영할 수 있는 땅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는 지난해 'LH 부동산 투기 사태' 이후 농지 관리가 강화되면서 임차를 할 수 있는 토지를 찾기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배씨는 "우리 과수원 나무들은 수령이 50년이 넘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옮겨심기가 어렵다"며 "50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나무들을 모두 잃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이어 "농부가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짓는데 나무를 심을 토지가 없으니 막막하다"고 덧붙였다.구월2지구 주민보상 대책위원회 이기복 위원장은 "정부가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이곳 주민들은 아무런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은 과수원의 모습. 2022.4.1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다른 지역에 옮겨심기도 어렵다"
임차농뿐 아니라 토지주들 반발도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구월2지구 예정부지 220만㎡ 일대의 지구 지정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배씨와 같은 임차농뿐 아니라 이 일대 토지 소유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지난 6일과 7일 열릴 예정이었던 구월2지구 전략환경영향평가 설명회도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구월2지구 주민보상 대책위원회 이기복 위원장은 "정부가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이곳 주민들은 아무런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며 "수십 년 동안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재산권 행사도 하지 못한 땅을 아예 빼앗기게 생겼다. 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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