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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예술회관의 '스테이지 149 연극선집'으로 선보인 극단 배다의 작품 '붉은낙엽'.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집사람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웃음만큼 짜증도 많은데, 사진에선 도저히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가족사진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니까. 우리 가족은 붉은 낙엽에 뒤덮여 있었다. 그 중요한 낙엽들을 어떻게 쓸어버렸어야 했는지 난 아직도 모른다."

극단 배다의 연극 '붉은낙엽'을 인천에서 만났다. 이 작품은 토머스 H. 쿡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15~17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선보였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의 '스테이지149 연극선집'으로 초청됐다. 15일 공연장을 찾았다.

연극은 주인공 에릭(박완규)이 부모가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압축된 생애를 가족사진을 들고 설명하는 대사로 시작한다.

자칫 집중력을 잃게 하고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는 긴 설명이 오히려 그 반대였다.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붉은낙엽'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부터 마치 마법의 주문에라도 걸린 것처럼 배우들의 연기에, 작품 전체에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테이지149 연극선집 '붉은낙엽' 초청
토머스 H.쿡 동명 소설 바탕 각색 작품
트릭·기교에 기대지 않는 묵직한 정극


작품은 미국의 한 평화로운 마을이 배경이다. 에릭의 가족에게 이웃집 카렌의 8살 딸 에이미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는데, 실종 전날 에이미를 돌본 에릭의 아들 지미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에릭에 대해 의심이 시작되고 에릭의 가정에는 균열이 생긴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알게 됐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려 일부러 잔뜩 긴장해 집중하거나 추리 소설이 배치해놓는 이런저런 단서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었다.

그저 객석에 앉아 눈과 귀를 열어두고 무대 위 배우의 몸짓과 표정, 대사를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했다. 객석의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실험이나 사소한 트릭, 기교 등에 기대지 않은 '단단하고 묵직한 정극'이라던 극장 관계자의 설명이 이해가 됐다.

105분이라는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유튜브 클립 영상보다도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연극의 기본에 충실해서였을까, 보는 이로 하여금 앞으로 '연극'이라는 예술 장르에 빠져들게끔 했다.

작품은 지난해 우리나라 연극계를 휩쓸었다.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과 연기상, 신인연기상, 무대예술상을,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신인연출상,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장관상 등을 받았다.

'스테이지149 연극선집'은 2014년부터 빼어난 작품을 초청해왔다. '백석우화'(2016),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2017), '위대한 놀이'(2018), '해방의 서울'(2019) 등 정통 연극의 명맥을 잇는 작품들을 소개해왔는데, '믿고 보는' 공연 기획으로 자리 잡았다.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