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투석병원 화재사고, 큰 불로 안 번졌지만 인명 피해 컸던 이유는

'이천 학산빌딩 화재' 47명 사상
입력 2022-08-07 16:03 수정 2022-08-07 20:32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8-08 2면
신장투석 전문병원이 입점한 이천시 관고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미처 대피하지 못한 5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지는 등 모두 47명의 사상자가 발생(8월5일 인터넷 보도=[종합 2보] 5명 숨진 이천 관고동 상가 화재… "거동 불편한 고령 환자 피해 컸다")한 가운데,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들의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단독 건물이 아닌, 고층 상가 건물에 입주한 병원에 대한 피난 시설 설치 등 안전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층 병원에서만 사망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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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화재로 인해 사망자 5명이 발생한 이천시 병원 건물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조사를 위해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8일 오전 소방서 등 관계기관과 2차 합동감식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2022.8.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지난 5일 오전 10시20분께 이천시 관고동의 한 4층짜리 건물에서 불이 났다. 신고를 받고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은 이날 오전 10시31분께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급히 진화 작업에 나서 1시간여 만인 오전 11시29분께 모든 불을 껐다. 불은 해당 건물 3층에 위치한 스크린골프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가 난 상가는 지난 2004년 사용승인을 받은 연면적 2천500여㎡ 4층 건물로, 1층에는 음식점과 사무실, 2층에는 한의원, 3층에는 스크린골프장 등이 입주한 상태였다. 이 스크린골프장은 화재 당시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화재가 크게 번지진 않았지만, 인명 피해는 컸다. 특히 이 건물 4층 신장투석 전문병원에 내원한 환자들의 피해가 컸는데, 사망자 5명 중 4명은 투석환자이고, 나머지 1명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자 이외에도 42명이 중·경상을 당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특히 화재가 난 이후 4층 병원에 있던 고령 환자들은 거동 등의 이유로 대피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사고로 장인을 잃은 한 남성은 "간호사들이 탈출하는 환자들의 투석 줄을 가위로 끊어줬다고 한다"면서 "3층에서 불이 나 계단으로 탈출하려던 사람들 피해가 컸다. 나중에 탈출해 옥상으로 간 사람들은 살았다고 한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숨진 투석환자 4명의 연령대는 80대 2명, 70대 1명, 60대 1명으로 모두 고령자였다.
마지막까지 환자 곁 지킨 현은경 간호사

환자 대피 돕다 숨진 현은경 간호사 발인 엄수
지난 5일 경기도 이천시 학산빌딩 화재 당시 투석 환자들의 대피를 돕다 숨진 간호사 현은경 씨의 발인이 7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2022.8.7 /연합뉴스
 

"간호사 일에 평생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던 아내인데…."


사고 당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에서 만난 현은경(50)씨의 유가족들은 그가 '사명감 넘쳤던 간호사', '좋은 어머니'였다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씨의 남편은 "아내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이 병원에서 일했다. 병원장 다음으로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었다"면서 "간호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했던 사람이다. 간호사란 직업이 그런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현씨와 그의 가족들은 다음 날 현씨 아버지의 팔순 잔치에 함께 모여 단란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아들(21)은 "어제 엄마와 한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친구들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면서 "오늘 엄마가 퇴근하면 같이 안경을 맞추러 가려고 했다. 엄마가 많이 무서웠을텐데…"라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현씨는 마지막까지 환자들의 대피를 옆에서 도왔다. 장재구 이천소방서장은 당일 현장 브리핑에서 "투석은 중간에 바로 끊을 수 없다고 한다. 간호사 분들이 전부 끝까지 남아 환자들을 최대한 보호하려고 했을 것"이라며 "연기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의료진들은 환자 옆에서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온·오프라인을 통해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마련한 온라인 추모관엔 현씨를 추모하는 글이 7일 오후 3시까지 1천200여개가 작성됐다. 정치권 등에선 현씨를 의사자로 지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현씨의 발인은 이날 오전 이천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수평 피난 시설 설치해 안전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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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사망자 5명이 발생한 이천시 병원 건물 화재현장의 모습. 2022.8.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4층 병원엔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간이)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스프링클러는 건물 1~2층을 사용하는 한의원에만 설치됐고,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3층 스크린골프장과 4층 투석전문 병원에는 설치되지 않았다고 소방 측은 설명했다. 다만, 해당 병원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되면서 2019년부터 입원시설을 갖춘 의원급 의료기관에도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 됐지만, 불이 난 병원은 입원실이 없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모든 것을 법의 강제 규정에 의해 안전을 담보하는 건 무리지만, 의료행위를 하는 곳은 공익을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소방시설을 설치한 건축물에 병의원을 개원하도록 조건부 조항을 달아 안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손 교수는 이어 "단독 건물을 쓰는 병원은 (화재 안전에 대한) 관리가 잘 되지만, 근린생활시설 등에 입점한 병원의 상황은 다르다. 층이 높을 수록 임대료가 싸고, 높은 층에 입점한 병원은 재난이나 화재, 폭발, 붕괴 등 사고가 났을 때 인명 피해의 위험이 크다"면서 "이번 사고처럼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탈출 시킬 때 침대를 전체 분리하지 않고도 피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 미국 등 외국에선 수평으로 이동 가능하게 해 옆 건물로 이동시키는 게 가능한데, 한국은 위 아래로 수직 이동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70여명 규모 전담수사팀을 구성한 경기남부경찰청은 8일 오전 10시30분부터 2차 합동감식에 나선다. 경찰은 사고 당일 1차 감식을 통해 3층 스크린골프장 입구 측 1번 방에서 처음 불이 시작된 정황을 발견했다. 사고 당시 3층에서 철거 작업을 하던 작업자 3명으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전기적 요인과 작업자 과실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를 하고 있다.


/서인범·배재흥·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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