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집] 유가족 분쟁 부르는 '보훈혜택 좁은 문'

3대가 망하는 독립운동, 국가는 후손 1명만 돌봐준다
입력 2022-08-14 20:00 수정 2022-08-15 21:40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8-1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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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 1인으로 지정된 보상금 지원이 유가족 분쟁을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순위자를 차별 우대하는 데다 전체 독립유공자 후손의 단 10분의 1만이 보훈혜택을 받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일제의 국권침탈이 이뤄진 1895년부터 광복 직전인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으로 순국해 건국훈장·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람은 순국선열로, 국권침탈 전후로 역시 광복 직전까지 항거해 건국훈장·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람은 애국지사로 인정된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아울러 독립유공자로 지칭하며 이들의 자손인 유가족 및 자손들은 국가로부터 보훈혜택을 받는다. 기본적인 보상·연금부터 보훈병원과 위탁지정병원 의료혜택, 학교 수업료 및 취업보조 등 보훈 혜택의 범위와 내용은 다양한 편이다. 
가족간 협의 통해 대상자 추려야
"지정땐 자긍심인데 축소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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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수척한 모습의 아버지가 정면을 응시하고 딸은 아버지의 오른팔을 붙들고 뒤를 경계하듯 바라보고 있다. 일제강점기 군수물자를 찍어내던 미쓰비시 공장이 가동됐던 자리인 부평공원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의 동상이다. 며칠 있으면 제77주년 광복절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강제징용노동자 동상 모습처럼 어렵게 살고 있다. 더군다나 보훈혜택 지원이 후손 1인으로 제한돼 유가족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실정이다. 2022.8.1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문제는 보훈혜택이 적용되는 범위다. 보훈혜택 지원 대상을 '3대'로 못 박아 놓은데다 이마저도 지원 대상을 가족 1인으로 한정한 것이다. 보훈혜택 선순위자 1명은 보상금·주택 우선 공급·국공립시설 이용료 감면 등 혜택을 받고 나머지 유공자 손자녀까지는 대학·고등학교 입학금, 수업료 면제·취업지원·일부 진료비 부담금 감면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선순위자와 나머지 가족이 차등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다.

광복 77년을 맞으면서 보훈혜택 대상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 현재 경기도 내 보훈혜택 대상자는 2천116명, 인천은 385명밖에 되지 않는다.



가족 중 보훈대상은 배우자→자녀→손자녀→자부 순으로 우선 순위가 정해지고 순위가 같은 경우엔 가족 협의를 통해 대상자를 추리게 돼 있다. 협의가 원활하지 않으면 주로 부양한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등의 기준을 적용해 대상자를 가리는데 이런 과정에서 가족간 다툼이 발생한다는 게 유가족 및 후손들의 전언이다.

전몰군경과 형평성을 맞추는 탓
수혜자 10% 안돼, 전국 8633명뿐
 

황의형 대한광복회 경기지부장은 "국내 독립운동가 중 대다수가 1990년대 이후에야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았다. 지원 시기가 많이 늦은 것"이라면서 "유족들도 이미 나이가 많아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원 혜택 대상을 두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보훈혜택 대상인 안송란(80·이천)씨는 "6남매 중 막내로 아버지가 경북 안동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제가 막내인데 독립유공자 보훈 대상이 된 건 오빠 셋과 언니 둘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아주는 지역 유지였던 안씨 집안은 3·1 운동 당시 사람들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며 운동 참여를 독려한 것을 질시한 일제가 안씨 아버지를 붙잡아 형무소에서 고문하며 가세가 기울었다.

형무소에서 손가락이 잘리고, 1년6개월 형을 살고 출소한 뒤엔 후유증인 기관지염을 앓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뒤늦게 제공된 보훈혜택은 유가족 중 1인으로 제한됐다.

또 다른 보훈혜택 대상인 최동율(84·인천 서구)씨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의 아버지 최봉한 애국지사는 전북 정읍농업학교(현 정읍제일고등학교) 재학시절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적발됐다. 사망 이후 애국지사로 인정됐으나, 최씨만 보훈혜택을 받고 있다.

 

"동생이 몸이 좋지 않아 오랜 기간 병원에 다녔지만, 보훈 대상자가 아니어서 의료비 지원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독립운동을 하게 되면 집안 전체가 어려워지는데, 형제 중 한 명만 보훈혜택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금액적인 부분을 떠나서 보훈혜택 대상자로 지정되면 자긍심이 있을 텐데, 이런 부분을 축소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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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앞둔 11일 부평공원 소녀상 모습. 2022.08.1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런 일의 배경에는 전몰군경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시대 상황이 있다. 1965년 보훈혜택이 최초로 개시될 때는 사망한 유공자 증손자녀까지 혜택이 돌아가게 했으나 1973년 유공자 수권 대상으로 1세대씩 축소해 손자녀(3대)까지로 제한했다. 참전 유공자에 주어지는 혜택과 형평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1인 한정 법률' 헌법불합치 결정
보훈처 "균등분할 개정안 준비중"

반세기 가까이 시간이 흘러,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6·25 전쟁 중 숨진 군경(전몰군경) 자녀 중 사실상 첫째에게만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률이 다른 자녀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자녀에 균등 지급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고 있는 단계다. 전국적으로 독립유공자 유가족은 8만9천명 가량인데, 그 중 보훈혜택을 받는 사람은 10%에 채 미치지 못하는 8천633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보훈처는 "전몰군경 자녀 수당 수급권자 1인 한정 법률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면서 균등 분할 지급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추후 상황을 지켜보고 '독립유공자예우법'도 바뀔 수 있다"며 "독립유공자 예우 관련 법안끼리의 균형을 고려해도 그런 방향(개선)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주엽·신지영·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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