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집] 기생 출신에 조선인 감시 친일활동… 인터넷 퍼진 김란사 열사 '가짜 정보'

탄생 150주년… 잘못된 역사 '바로잡기'
입력 2022-08-14 20:07 수정 2022-08-15 21:41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8-12 4면

674021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 유학 당시 김란사. /경인일보DB

인천을 대표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 열사가 기생 출신이라고?

2022081101000508000022892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1872~1919) 열사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 유포되고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란사는 1894년 남편이자 독립운동가인 하상기가 인천 감리사(조선 말기 개항장 행정과 대외관계의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 별감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1900년 미국 웨슬리언대학에 입학해 우리나라 여성 중 처음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이후에는 이화학당 교사로 활동하며 성경학교 설립, 부인 계몽교육, 독립운동 등 사회활동에 앞장섰다.



이때 유관순을 가르치기도 했다. 고종의 통역사이기도 했던 김란사는 1919년 비밀리에 파리국제강화회의 한국대표로 가던 중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 스파이에게 독살된 것으로 역사학계는 보고 있다.

1894년 남편 '인천감리사' 부임
1919년 파리회의 가다 독살 추정
김용택 회장 "거짓주장 자꾸 생겨"

김란사에 대한 대표적인 잘못된 사실은 그가 기생 출신이었다는 이야기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선 결혼 당시 김란사의 나이가 19세이고 하상기는 36세였고, 하상기는 재혼이었기 때문에 김란사가 '하상기의 첩이었다'거나 '기생 출신'이라는 거짓 정보가 나돌고 있다. 김란사와 하상기가 일본 유학시절 일본 내 조선인을 감시하는 친일 활동을 벌였다는 허황된 주장도 있다.

이는 명백한 오류라는 것을 김란사와 하상기의 종적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역사 연구자들은 말한다.

김란사와 하상기가 인천 감리사 별감으로 약 7년 동안 근무하면서 인천지역 주요 인사의 친일 활동을 고종에게 보고한 기록이 남아 있고, 이후에도 조선 왕실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친일 활동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연구자들은 또 부유한 상인 출신 자제였던 김란사가 기생으로 활동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낭설이라고 설명한다.

김란사애국지사기념사업회 김용택 회장은 "김란사의 행적을 재조명해도 모자랄 판에 잘못된 사실이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퍼져 나가고 있다"며 "이를 발견할 때마다 수정을 요청하고 있으나, 거짓 주장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랜 기간 김란사에 대해 연구해 온 김창수 인하대학교 초빙 교수는 "인천 역사와 관련된 독립운동가에 대해 잘못된 사실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경인일보 포토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김주엽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