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가 잔뜩 쌓인 김동연 경기도지사 책상 위엔 경기도지사 직함도 없이 '김동연' 이름 석자 적힌 손바닥 만한 명패가 놓였다. 명패 뒤엔 '정직, 성실, 창의'가 굵게 새겨있다. 작고 낡은 명패를 신기해하는 기자에게 김 지사는 "이건 내가 사무관으로 처음 공직을 시작했을 때부터 쓰던 것입니다. 경제부총리 때도 전 이 명패를 뒀어요.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나라 살림을 챙겨야 했던 김 지사는 '실용'이 몸에 밴 듯했다. 보수와 진보, 정권은 바뀌어도 경제관료 김동연은 변함없이 경제를 책임져야 했다.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잘라야 하고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은 고집있게 지켜내야 하는, '실용'의 정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한 인생의 필모 덕에 정권교체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경기도민의 실용적인 선택을 받았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안정한 대내외 정세, 고유가·고물가·고금리의 경제위기, 작금의 현실에서 경기도민도 실용을 택했을 거라는 게 보통의 분석이다.
영화 같은 역전승으로 경기도지사가 됐지만, 취임 후 55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매끄럽게 흘러갈 것을 기대했지만, 절묘하게 절반씩 의석을 차지한 경기도의회와 어느 때보다 치열한 '허니문'을 보내야 했다. 34년 경제관료로 공공을 위해 일해 온 그지만 선출된 공직은 처음이다. 관료 김동연에서 정치인 김동연으로, 신고식을 세게 치렀다. 이번 인터뷰는 그래서 특별하다. 통상 취임 100일을 맞아 그간의 소회와 비전을 나누는 게 관례지만 가까스로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통과되고 민선8기 도정의 방향성을 담은 인수위원회 백서가 나온 지금이 경기도지사 김동연의 생각을 들어야 하는 적기라고 판단했다.

김 지사는 도민들이 '경제 전문가 김동연'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도민들이 (나를) 경제전문가로, 경제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만들며 힘든 경제 상황이 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졌다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 살리기, 경제 위기 극복 등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 기본을 뛰어넘어 '미래 대비'에 앞장서 대처해야 한다. 경기도를 대한민국이 따라 할 모델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가 그리는 경기도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는 "사회적 경제, ESG 경영,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나오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청년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도가 포용과 상생 공동체로 갈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도민들에게 상대적으로 고른 기회가 가도록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환경 마련 위해 9월 초까지 도정혁신위 구성
"공약은 빚" 재점검·이행으로 신념 지켜낼 듯
이를 추진하기 위해 김 지사는 도정 자문회의와 함께 인수위가 제안한 '도정혁신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이다. 염태영 경제부지사와 함께 강성천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을 도정 자문회의 위원장으로 발표하며 도정자문회의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커졌다. 김 지사는 "도정자문회의는 인선 막바지 단계로 12~13명 규모로 이달 안에 완성될 것"이라며 "혁신과 벤처분야, 부동산, 지방자치 전문가 등 각 분야에 실질적으로 기여를 할 수 있는 이들로 자문위원을 구성한다. 도 집행부와 함께 각자 맡은 분야의 정책을 고민하고 토론하는, 굉장히 실질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공약은 빚'이라는 김 지사의 생각도 도정혁신위원회를 통해 구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는 "인수위에서 공약을 재점검하고 이행, 평가하는 도정혁신위원회를 건의했는데, 이를 받아들여 10여명 안쪽으로 9월 초까지는 구성하려고 한다"며 "도정혁신위원회, 도정자문회의 모두 형식적으로 정해진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부여하되 주 1회 출근하는 등 실질적으로 기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정에서 제일의 원칙은 '도의회와 협의'
수원군공항·경기북도 등 이해관계 얽힌 이슈
"소통과정 거쳐 형식적으로 대하지 않을 것"
미래 혁신을 강조하는 만큼 경기도는 올 하반기 조직개편이 이뤄질 전망이다. 김 지사는 조직개편에 앞서 제일의 원칙은 '도의회와 협의'라고 꼽았다. 김 지사는 "우선 도의회와 충분히 사전협의를 하겠다"며 "하반기 조직개편은 민선8기가 추구하는 도정의 가치에 맞게끔 할 것이다. 선거, 인수위 때 늘 강조했던 '따뜻한 혁신' '사회적 경제'가 강조될 것이고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신설과 경기국제공항 등을 다루는 일이 정규 조직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회경기수석이 현재 공모 중에 있는데, 경제활성화, 일자리 정책 뿐 아니라 복지 등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도민에게 더 고른 기회를 주는 포용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수원군공항 이전(경기국제공항) 문제, 경기북도 신설 등 도내 여러 지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에 대해서 형식적으로 대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지사는 "공론화 주제로 선정했다는 의미에 대해 나는 절대 형식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말은 실질적으로 의견을 듣겠다는 뜻"이라며 "어떤 비전이 있고, 어떤 혜택이 있을 것인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한번 여론조사해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여러 지역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북도의 경우 어떤 산업을 유치할 지, 국제공항이면 공항신설로 반도체 허브와 국제도시 건설 등 청사진을 만들어 해당 지역 주민이 찬성할 수 있도록 끝까지 소통하며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11대 경기도의회가 원구성이 되기까지 40일이 소요됐고, 도민의 눈총을 받았다. 그 논란의 중심에 경기도와 경기도의회의 갈등이 있어 더 이목이 쏠렸다. 당선과 동시에 '협치'를 강조했던 김 지사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우여곡절 끝에 갈등이 봉합되긴 했지만, 앞으로 도의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느냐는 정치인 김동연의 큰 숙제가 됐다. 김 지사는 "도의회가 절묘하게 동수가 된 것은 도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쟁을 그만하고 건전한 정책 경쟁으로 서로 협력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여야정협의체 가동중인 것과 다름 없어
지금까지 나는 (78대78의) 도의회 구도를 간과한 적이 없고, 도의회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민생경제를 위한 1차 추경은 재적의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협치에 있어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장일치로 민생회복에 나선 것이 좋은 시작이다. 앞으로도 도의회 여야 의원들과 많은 협의를 하며 차근차근 신뢰를 다져가겠다. 신뢰를 쌓다보면 높은 단계의 협치로 분명히 갈 수 있다"며 "내가 제안한 여야정협의체도 현재 도의회가 힘을 합쳐 주어 사실상 가동 중인 것과 다름없다. 빠르게 협의체를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중앙정부를 향해선 지방정부와 생산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냉정하게 평가했다. 김 지사는 "여러 차례 '경기도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고 말했다. 경기도지사가 국무회의에 배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경기도가 모든 지자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경기도는 대한민국 축소판이며, (내가) 경제 위기나 국정 운영에 있어 많은 경험을 가진 이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며 "도지사의 국무회의 배석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경제위기 대처 등 여러 사안에 있어 생산적으로 토론하고 좋은 방향의 정책을 함께 펼치자는 취지"라고 역설했다.
국무회의 배석은 건강한 토론하자는 취지
김 지사는 "지금 정부는 야당 자치단체장의 말이나, 국회에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면서 "경기도민의 삶을 바꾸는 생활정책을 통해 경기도를 잘 만들어보겠다. 인구, 기후, 디지털 전환 등 미래정책에 있어 중앙정부가 경기도를 벤치마킹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서 정치교체공동위 결의문 제안할 것"
김 지사 제안으로 시작된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교통 문제 등 수도권 3자 협의체 구성에 대해선 적극적인 의견을 펼쳤다. 김 지사는 "첫번째 모임은 내가 김포에서 주재했고, 다음달 2일에 유정복 인천시장의 주선으로 모일 예정이다. 그다음 모임은 서울시장에서 주선할 것"이라며 "적어도 수도권 문제에 있어 당리당락,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2천600만 수도권 주민의 삶을 향상하는 데 뜻을 함께 했다. 교통, 수도권매립지, 주거부동산 등에 대해서 긴밀히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더불어민주당 정치교체공동위원장인 김 지사는 "도에서 제대로 된 도정을 펼쳐야 민주당도 견인할 수 있다. 도정 성공이야말로 민주당의 가치와 정책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증거"라면서 "민주당 지도부가 새롭게 꾸려지면 생산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곧 민주당 전당대회가 도내에서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정치교체공동위원장으로 결의문을 제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